25일 정치권과 정부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21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반도체특별법을 심사했으나 반도체 R&D(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적용 예외와 보조금 지급 조항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반도체법 추진에 제동이 걸린 건 R&D 직무를 주 52시간 근무 적용의 예외로 두는 조항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당사자 간 서면 합의를 전제로 반도체 R&D 인력을 주 52시간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업종이나 직무 특성과 무관하게 일괄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반도체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산업계의 상황을 반영해 포함됐다. 미국에서 고소득 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를 면제하는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의 한국 버전인 셈이다.
그러나 야당과 노동계는 이 법이 통과되면 노동시간 유연화가 산업계 전반으로 퍼져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고 근로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산자위 야당 간사인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다수 의견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라며 “특별법마다 특별 조항을 넣어 근무 형태를 허물면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기업들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를 받아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특별연장근로나, 근로기준법상 선택근로제와 탄력근로제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의 필요조건인 R&D에 몰입하려면 인재들이 마음껏 일할 근로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류성원 한국경제인연합회 산업혁신팀장은 “중국, 미국 등과 비교해 반도체 인력 차이가 큰데 (노동력)투입에서마저 제한을 걸면 격차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당초 여당 내에서는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결국 발목을 잡아 특별법 처리가 지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법안을 주도해 온 삼성전자 사장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근로시간 문제는 따로 떼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다루는 투트랙을 주장했다. 여당은 법안소위에서 한 차례 더 논의를 거친 뒤 연내 합의를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가 줄곧 요구해 온 보조금 지급 조항을 두고도 여야가 이견을 보인다. 민주당 내에서 “보조금이란 용어가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규정을 위반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현재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데 (정치권의) 안일한 인식에 답답하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일본 등 전 세계가 수조원씩 개별 기업에 보조금 등을 지급하는 마당에 국회가 ‘반기업 정서’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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