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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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성공한 엘리트인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자신을 닮지 않고 소심한 어린 아들이 답답하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진짜’ 아들을 찾은 뒤 자신이 원하던 부자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료타는 혈연 아들과 키운 아들 사이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5일 배우 정우성이 앞서 모델 문가비가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아들의 친부임을 인정했다. 그는 소속사를 통한 입장문에서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결혼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통상적인 관습을 벗어나 ‘이렇게 아버지가 되’는 방식을 보여줬다.
수십년간 톱스타로 지내온 독신 남성 배우의 난데없는 ‘아버지’ 커밍아웃은 당연히 전 국민의 점심 메뉴가 됐다. 그리고 도를 넘는 사생활 보도, 수십년 전 인터뷰까지 다시 소환되면서 예의 ‘난민’ 태그가 달린 조롱 글이 댓글난을 부지런히 채웠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정우성의 무책임을 비난하는 반응의 건너편에는 결혼과 양육이라는 전통적인 틀에서 이탈한 그의 선택을 응원하거나, 이참에 빨리 결혼해서 애 낳으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저출생 정책을 벗어나 다양한 가족과 양육 방식을 존중하자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톱스타의 혼외자라는 선정적인 뉴스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뜻밖에 총천연색이라 놀라울 정도다.
사실 입이 근질근질하다. 주어진 몇줄의 팩트만 가지고 누구라도 ‘뇌피셜’로 장편 소설 한권을 뚝딱 만들 수 있는 소재다. 실제로 많은 매체들이 하루 동안 쏟아낸 이야기들로 50부작 대하드라마 수준의 막장극이 쓰여지고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정우성은 그간의 점잖고 반듯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됐고, 광고는 물론이고 작품 캐스팅에 있어서도 큰 약점을 가지게 됐다.
쇼비즈니스의 중심에 30년 넘게 있던 그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과 친모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공개하는 건 한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영혼까지 탈곡되는 과정을 겪을 것이라는 걸. 어쨌든 그는 지금 당장 욕을 덜 먹는 방법을 찾기보다 본인이 원하고 할 수 있는 방식의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 선택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말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우성 득남 사건’은 우리가 연예인을 바라보는 방식, 그들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의 허상을 허무는 하나의 계기가 될 법하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정우성 소속사는 애초 가려 했던 청룡영화상 시상식 참석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친자 소식에 쏠린 관심이 작품이나 수상자들에게 피해를 줄까 우려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피하지 않고 참석해 배우로서, 아버지로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몫을 감당했으면 한다. 나아가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가족과 양육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현실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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