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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본인 관심 법안 발의’ 의원에 청탁하고, 인권위 긴급 안건 올린 이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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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충상 국가인권위원(가운데)이 지난 1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질의를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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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자신의 관심 법안을 국회에서 발의하기 위해 국회의원에게 청탁하고, 법안 처리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안건을 인권위 회의에 발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 현안과 동떨어진 안건이라는 지적과 동시에, 공적 권한을 사적 목적에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인권위 안팎에서 나온다. 산적한 인권 현안을 제쳐두고 특정 위원의 관심사에 맞춰 회의를 이끈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운영 방식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인권위는 지난 25일 2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의견표명의 건’을 의결 안건으로 올렸다. 이 상임위원이 낸 것으로, 지난 9월 국회에서 입법 발의된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인권위가 찬성 의견을 표할 것을 검토하자는 내용이었다. 조배숙 국민의힘 등이 발의한 이 법안은 현행 민사소송법의 ‘재소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민사소송의 판결 확정 전에 원고가 피고의 동의를 받아 소송을 취하하면 다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상임위원은 이날 27분여간 안건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제가 조배숙 의원님한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랬더니 조 의원님이 이렇게 (발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의 법안 발의에 자신이 직접 관여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이 상임위원은 “제가 논문을 썼다” “독일어로 된 (관련) 민사법을 다 읽었다” “제가 한 연구가 연구 용역을 다 한 거다”라고 말하는 등 이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이 상임위원은 조 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에 전북도지사 후보로 나섰을 때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회의에선 이 안건이 인권위에서 다룰 만한 사안인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소라미 위원은 “현행법으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아 진정을 제기했다면 검토를 해야겠지만, 이는 고심을 많이 해야 할 사안”이라며 “원고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우리가 의견을 표명해야 할 사안인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원민경 위원은 “필요한 안건은 뒤로 하고 이충상 위원께서 민사소송법을 공부하시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한 명의 의원이 개정안을 만든 것 아니냐”라며 “법안이 통과되려면 더 많은 국민의 권리 보호와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민사소송법 전문가도 이것이 쟁점이 되는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말했다.

위원들은 이 안건을 긴급하게 상정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안건을 시급하게 다루는 게 전원위 운영 취지에 맞냐는 취지였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인권위 진정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사건을 처리해주길 학수고대하는 진정인들이 있다”며 “심의만 1년 이상 대기 중인 안건보다 이 안건이 급한 건가. 왜 이 위원에게 ‘패스트트랙’을 허용하는 거냐”라고 말했다. 김용직 위원은 “웬만하면 전원위는 순서대로 하되 정말 인권과 관계된 것만 먼저 (상정)하는 것으로 운영했으면 한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이 위원 본인이 안건을 상정하고 싶다고 의견을 표했고, 마지막일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를 하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상정된 것”이라고 했다. 이 상임위원은 지난 6일 인권위에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그는 지난 1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궐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입법 취지에 맞춰 사표 수리 전까지 직무는 수행해야 한다”며 후임자 선출 시까지 직무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청구권과 관련해 정책 권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권위의 주된 업무 영역에 들어가는지 의문”이라며 “개인적인 정책 선호를 안건으로 다루는 것은 인권위를 사유화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이 의견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수 있지만 출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이 상임위원이 관련 안건을 인권위에 제안한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 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 사표 제출
https://www.khan.co.kr/article/20241108195200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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