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작은 실수에 잡아먹힌 사람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체스 잡지를 훔쳐갔던 소녀가 유명 선수가 되어 가게에 온다. 주인은 어떤 마음일까? 드라마 ‘퀸스 갬빗’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명석 | 문화비평가



제철 재료와 발효 음식으로 소문난 식당은 아늑한 대신 좁았다. “저쪽 테이블은 합석하실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유 감지덕지죠. 우리 셋은 테이블 반쪽에 옹기종기 앉아 주문을 하고선 한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반대쪽에 쾅하고 가방이 떨어지며 테이블을 울렸다.



세련된 외모에 깡마른 중노년의 여성이 그쪽에 앉았다. 미안하다는 말 혹은 약간의 제스처를 기대했지만, 온몸으로 피곤과 짜증을 발산할 뿐이었다. 그는 손으론 휴대전화를 두드리며 눈으론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종업원을 찾는 것 같았지만, 메뉴판도 식기도 직접 챙겨와야 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수다를 나누며 테이블 사이에 벽을 치기로 했다. 다만 그걸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예감은 분명했다.



다시 쾅. 이번엔 물 주전자였다. 우리 일행의 눈이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나는 좋은 기회라고도 여겼다. 이번엔 우리의 불쾌함을 분명히 느꼈을 테니, 한번의 사과로 아까의 무례까지 덮고 서로 조심하며 평화로운 식사를 즐기는 계기로 삼기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는 잘못의 책임이 무거운 가방에 있다는 듯 노려보다가, 우리 쪽 바닥의 가방 보관 바구니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번엔 발을 뻗어 바구니를 끌어가려고 했다. 또 다른 무례일 수도 있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어떤 이유로 체력과 인내력이 바닥난 상태겠지. 오히려 좋아. 이번엔 내게 기회가 온 거야. 나는 얼른 손을 뻗어 바구니를 밀어드렸다. 이제 저쪽의 ‘고마워요’라는 말과 멋쩍은 웃음으로 과거사를 정리하면 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접시 위의 재료는 신선했고 요리는 향그러운 발효액 속에서 춤을 추었다. 하지만 딱딱히 굳은 내 위장은 소화액을 분비시키지 못했다. 내가 대단히 예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간사한 실용주의자로서 답답했다. 그냥 미안하다, 고맙다, 말 한마디면 되는데 왜 그걸 안 할까? 아마도 그는 첫 실수에 먹혀버렸으리라. 가방을 놓쳐 자신이 무례한 사람이 되었다는 그 사실 속에 허우적댔을 것이다.



예전 군대 행정실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당직사관인 소대장은 몸도 크고 말도 거칠지만 사병들과 친하고 편의도 잘 봐주는 타입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장난스럽게 책상을 내리치다가 상판 유리를 와장창 깨어버렸다. 당황한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내가 너희들 친구야?” 분명 화가 나서 유리를 친 게 아니셨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유리를 깬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부대원들을 연병장에 집합시켜 격노를 토했다. 그날 이후 사람 자체가 바뀌었다.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썩지 않게 다루는 게 어른의 발효 기술이다. 과거의 나는 아주 서툴렀다. 대학 시절 매점에서 지갑 속 동전을 빼는데 점원에게 내던진 듯 굴러가 버렸다. 점원은 모멸감에 찬 눈으로 노려봤고, 나는 도망친 뒤 다시는 매점에 가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된다. “아이고, 제가 수전증이 있어서.” 어설픈 농담도 필요 없다. 그런데 살다 보니 또 알게 되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일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한겨레

체스 잡지를 훔쳐갔던 소녀가 유명 선수가 되어 가게에 온다. 주인은 어떤 마음일까? ‘퀸스 갬빗’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드라마 ‘퀸스 갬빗’에서 어린 시절 가게에서 체스 잡지를 훔친 소녀가 체스 선수로 성공한 뒤 그 가게에 온다. 잡지를 사려는 듯 매대로 가져오자, 주인이 무표정하게 말한다. “이번엔 안 훔쳐 가고?” 주인공은 뒤늦게 깨닫고선 연한 미소로 말한다. “잔돈은 가지세요.” 그걸로 금전적, 정신적 빚을 갚았고 찜찜했던 이야기의 실타래는 매듭지어졌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린 셈이다.



가끔 이런 기사를 읽는다. 오래전 서점에서 책을 훔쳐 갔던 사람이 책값과 사죄의 편지를 몰래 두고 갔다는.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점 주인들은 그가 누구인지 대체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시장에서 자라 ‘도둑놈은 잊지 못한다’는 상인의 본능을 안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그가 실수를 고백하고 뉘우칠 때까지, 자신 역시 찜찜함을 안고 갈 동반자라 여기는 거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미안하다’고 하면 고맙다.



▶▶세상의 모든 책방, 한겨레에서 만나자 [세모책]

▶▶핫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