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7MW 규모의 영국 트리톤 놀 해상풍력 발전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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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행동 촉구(Enabling Action), 포부 상향(Enhancing Ambition)'을 위해 새로운 기후 재원 목표 설정과 국제 탄소 시장 운영 기반 조성을 주요 과제로 다뤘다. 지난달 24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COP29가 막을 내린 가운데 앞으로의 실질적인 이행과 협력이 향후 핵심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에서 모인 198개국 협상단은 진통 끝에 선진국에서 연간 최소 3000억달러(약 421조원)의 기후 대응 재원을 부담하는 데 합의했다. 2009년 타결된 기존 목표 금액보다 3배 늘어났다. 이 재원은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국가들의 공공·민간 부문에 걸쳐 매년 현금으로 지원돼 그동안의 피해를 보상하고 앞으로 기후 대응을 지원하는 데 쓰일 것이다.
기후 재원 논의가 구체적으로 시작됐던 건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COP16이었다. 당시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 연간 1000억달러 규모 공여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못했고, 이후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COP21에서 올해까지 목표를 달성하기로 했다.
이번 COP29에서 가까스로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원을 늘리는 데 성공했지만, 3000억달러는 가시적인 성과일 뿐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전제로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향후 실제 이행 과정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분담금을 내야 할 의무가 없다. 한국은 신흥경제국에 포함돼 재원 조성에 자발적으로 공여를 해왔다.
한국은 1993년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UNFCCC)에 가입했지만 당시 선진국에 포함되지 않아 기후 재원을 공여할 의무가 없다. 또한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도 개도국으로 분류돼 감축 의무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경제 성장으로 인한 탄소 배출 증가,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재정립 등 국내외 상황 변화를 반영해 정부는 합의 진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할 것을 약속했다.
한국은 이번 COP29에서 수립된 신규 기후 재원 목표(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 on Climate Finance·NCQG) 등 주요 의제가 합의될 수 있도록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현재 유엔 기후변화협약상 재원 공여 의무국은 아니지만, 양자·다자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개도국 기후 대응을 지원하며 국제사회의 노력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 저장 및 전력망 서약, 수소 행동 이니셔티브, 유기성 폐자원 분야 메탄 저감 이니셔티브, 기후행동을 위한 물 이니셔티브, 바쿠 글로벌 기후 투명성 플랫폼 등 5개 분야에 동참했다. 에너지 저장 및 전력망 확대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수 요소다. 따라서 국내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시장에 전력망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서약에 따르면 주요국은 2030년까지 글로벌 ESS 용량을 2022년 대비 6배(1500GW)로 늘리고, 전력망 강화는 신규 송배전선 설치나 교체를 통해 2040년까지 8000만㎞를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COP28의 재생에너지 3배 확대 협약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1500기가와트(GW)의 에너지 저장 용량 중 1200GW가 배터리 형태로 충당돼야 하며, 이는 현재 보급돼 있는 ESS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덧붙였다.
2018년 최대치를 기록했던 한국의 ESS 신규 설치량은 2022년에는 1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고, 누적 보급량도 4.1GW에 머물러 있다. 2020년 ESS 보급을 위한 지원 제도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서약을 이행하려면 2030년까지 ESS 용량을 25GW로 확대해야 하며, 이에 따른 정부의 지원 확대가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2030년까지 온실가스 30% 감축(2020년 대비)을 선언,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무탄소 전원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전원믹스를 구성해 탄소중립 이행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필요성과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한 신재생에너지의 괄목할 만한 성장 목표를 반영하고 있다. 해상풍력 설비 용량은 2030년 14.3GW에서 2036년 26.7GW로 86% 증가하는 것으로 계획됐다. 최근에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서 2030년 풍력 보급 목표를 18.3GW로 제시했으며 육상, 해상 등 풍력설비 규모를 2038년 40.7GW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국내 총발전량의 7.5%를 차지하는 규모다.
한국은 국제사회와 약속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조업 수출 중심의 국내 산업 지속을 위해서도 신재생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수출 100만달러 이상 국내 기업 610개사 중 83% 이상의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것을 요구받고 있지만,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선진국에 비해 걸음마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수급이 어려워 수출 기업 중 7.5%는 사업장 이전까지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출범으로 대미 수출기업의 현지 생산 요구가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탄소국경세 등으로 인한 대유럽 수출까지 타격을 받는다면 국내 수출 제조업은 설 자리를 잃을 위험성이 크다.
한국 정부의 원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송전망 인프라스트럭처, 복잡하고 장기간 소요되는 인허가 절차, 불분명한 주민 수용성 확보 기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개별사업자 주도의 난개발 등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추가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장기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해상 풍력이 불가피한 대안이다. 한국은 산악 지대가 국토의 70% 이상이라 산림을 훼손하지 않는 이상 태양광이나 육상풍력 확대는 한계가 있다.
특히 육상풍력은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 설치가 어렵고, 산악 지형으로 인해 풍속과 풍향이 수시로 변하므로 경제성이 떨어진다. 이에 반해 국내 해상풍력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상에 비해 꾸준하게 일정한 방향으로 양질의 바람을 확보하고 있어 유리하다.
해상풍력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는 1991년 덴마크에 최초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됐으며, 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 2010년대 이후다. 현재 5개 대륙 17개 국가와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독일의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 RWE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 한국과 일본, 호주 등 3개 국가의 해상풍력 잠재력이 가장 큰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철강 및 전력부품 업체를 보유하고 있어 해상풍력 산업으로 전환이 용이하고, 전 세계적인 해상풍력 수요 증가 및 대형화에 대응 가능한 공급망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새로운 수출 기회도 확대될 것이다.
현재 대부분 글로벌 풍력 관련 기업들은 한국 케이블 기업과 협력하고 있고, 하부 구조물과 철강 공급에서도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미 확립된 산업을 기반으로 해상풍력이 도입되면 기술과 경험의 다양화도 가능한 상황이다. 조선업, 해양 석유·가스, 해양 구조물 제작, 케이블 제조, 철강 생산 등 기존에 강점을 갖고 있는 산업이 해상풍력 분야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풍력에너지위원회(GWEC)에 따르면 2030년까지 아태지역에서 총 112GW 규모 해상풍력 단지가 새로 설치될 전망이며, 시장 규모는 74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일자리 창출도 해상풍력이 가져오는 순기능 중 하나다. 해상풍력 발전 사업은 전(全) 주기가 30년 이상으로 길어 설계, 제조, 건설, 운영을 아우르는 방대하고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RWE는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에 발맞춰 이산화탄소 배출량 저감, 산업계 탈탄소화 지원, 지역 경제 활성화, 신규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매년 1000만t 이상의 이산화탄소(CO2) 감축에도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은 파리협약 목표에 맞춰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며 유럽과 세계 시장에서도 중요한 에너지 전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RWE는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영국 북해 도거뱅크에서 1.4GW 규모 소피아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추진 중이다. 이는 현재 건설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다.
소피아 해상풍력 발전단지는 12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하고, 지역 사회와 영국 전역에서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약 7억6000만파운드의 총부가가치(GVA)를 창출해 영국 경제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연간 풀타임 기준 취업자 수가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해상풍력산업협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13.5GW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 운영으로만 3만2000개의 직접고용 일자리를 창출했다. 영국의 수치는 개발·건설을 제외한 분야에 해당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공급망 규모를 감안할 때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한국 정부가 2030년 목표로 한 해상풍력 용량이 14.3GW로 더 크고, 영국에 비해 제조업 기반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한국 내 일자리 창출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상풍력 관련 특별법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현 상황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다. 국회에서 해상풍력 특별법과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풍력발전 시장에 남아 있는 규제 리스크가 줄어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게 되고, 중장기적으로 계획된 수요는 재생에너지 발전뿐만 아니라 인프라 및 공급망 투자도 확대할 것이다. 이를 통해 발전 단가 인하와 공급망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옌스 오르펠트 RWE 해상풍력 亞太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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