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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역사와 현실]성현 말씀보다 더 가까운 몽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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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이 되면 지역 향교는 좋은 날을 골라 춘추 대제를 거행했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대표 성현들을 대상으로 그 지역 수령 등 양반과 유생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지역 수령이 국가 권력을 대표하여 제사를 주재했고, 지역 권력(향권)을 대표하는 양반과 유생들이 이를 주관했다. 당연히 춘추 대제에서 제관을 맡거나 주관하는 일은 향권을 상징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 보니 향권의 향배가 명확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제사 주관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1824년 가을, 안동향교가 그랬다.

당파의 측면에서 안동은 영남 남인의 메카였지만, 중앙 정계에서 퇴출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은 영남 선비들의 당색도 바꾸었다. 유일한 자기 성취가 관직 진출이었던 조선 사회에서, 당색으로 관직이 막혀 있었으니 그들의 전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게다가 안동은 기호 노론에서 수령이 파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수령들은 전향한 기호 노론들에게 향교의 향권을 맡겨 향전(鄕戰)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판 당파 싸움은 주로 향교를 둘러싸고 이루어졌다.

1824년 안동향교의 추향 대제는 엄숙한 의례의 장이 아니라, 몽둥이가 난무하는 혈투의 장이었다. 시작은 대제를 준비 중인 향교에 50여명의 신유(新儒, 노론계열 유생들로 추정)가 들이닥치면서였다. 이들은 제관의 임무를 자신들에게도 나눠달라 요구했지만, 이 일을 주관했던 상임(上任)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 데다 대부분 제관들은 미리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실랑이 중 대제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음식상이 나오자 이를 본 신유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40여개 상을 몽둥이로 부수었다. 급기야 상임을 제외한 향교 임원은 모두 도망쳤고, 신유들은 상임을 겁박하여 자신들이 직접 대제를 거행하려 했다.

상임은 지금까지 준비해온 사람들 없이 신유들과 대제를 거행할 수 없다며 예정된 인원 중 3~4인만 부르겠다고 회유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유 무리가 향교 안에 들어와 소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몰래 외부로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금세 탄로 났고, 신유들은 상임을 끌어내려 “태를 맞아야 말을 듣겠다”며 몽둥이를 들었다. 이렇게 되자 보다 못한 향교 소속 노복들이 나섰다. 그들은 “상임이 매를 맞으면 우리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소리 지르며 뜰로 들이닥쳐 신유 무리를 두들겨 팼다. 갑작스러운 노복들의 매질에 신유들은 갓이 벗겨지고 옷이 찢어진 채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은근히 신유들을 밀고 있던 안동부사에게 이는 호재였다. 그는 향교에서 소란을 피운 죄를 물어 노복들을 잡아들였고, 몽둥이로 향교 이곳저곳을 부수게 했다.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 잠시 눈을 감고 안동부사로서 향교 관할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표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몽둥이를 들었던 노복들은 군사들의 몽둥이 앞에서 유린되었고 안동향교는 난장판이 되었다. 이 일을 기록한 노상추에 따르면 “변란도 이런 변란이 없었다.”(노상추, <노상추일기>)

조선 유학자들에게 향교는 어떠한 곳이었던가? 유생들의 교육공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학의 최고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신성한 장소이기도 했다. 특히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곳은 발걸음도 조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향권이 우선인 이들에게 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공자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하는 곳에서 몽둥이가 춤을 춘 이유였다. 향교 주도권이라는 쥐꼬리만 한 권력에도 향교 본래 목적이 사라지고 원초적 방법이 동원되는 것을 보면, 좀 더 큰 권력이면 어땠을까 싶다.

하기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총을 든 군인들이 민주주의 전당에 난입하는 일도 일어나는 세상이니, 안동향교의 일을 옛 상황이라고 비웃을 일만도 아닌 듯하다.

경향신문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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