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내란 및 군사반란이다
위중한 시간에 국회로 달려가고
소셜미디어에서 싸운 이들이
긴 밤, 민주주의를 지켰다
지난 밤 한숨도 못 잤다.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처의 비명 소리에 놀라 달려갔더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황당해서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곧이어 ‘대통령이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기에서 내린 특전사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려는 광경을 생중계로 보면서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몇몇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아연해서 뭐라고 말을 남길 수도 없었다. 그저 “이건 내란입니다”라고 몇 군데 쓴 게 전부다. 즉시 서울로, 국회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총칼이 두려워졌다. 망설이는 동안 국회로 의원들이,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군경의 저지를 뚫고 모인 국회의원들이 결국 비상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윤석열은 계속 침묵을 지키다가 체념한 듯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심장의 박동은 잦아들었지만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상계엄은 전시나 사변, 그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맞아 사회질서가 전반적으로 붕괴할 위기에 처할 때 군이 행정과 사법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비상조치다. 지금 이 나라가 그런 비상사태와 거리가 멀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대통령실의 윤석열과 김용현, 박안수 등 군 수뇌부가 저지른 이번 사태가 미친 짓이기 이전에 국가 전복을 꾀한 내란이자 군사반란인 이유다.
그뿐만이 아니다. 계엄사령관은 소위 포고령 제1호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특전사, 707특임단 등 정예 군병력을 투입하여 국회를 포위, 난입, 시설 파괴를 행하게 하고 국회의원들의 표결 행위를 방해하게 했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등 정치 지도자들을 체포하려 했다는 보도도 있다. 우리 헌법과 비상계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계엄사무의 범위는 행정부와 사법부에 그친다. 국회 등 입법부의 권능은 제한할 수 없다. 오죽하면 1979년 10·26사태와 1972년 10월유신 때 내려진 비상계엄령조차 정치집회의 허가나 금지를 규정했을 뿐 국회, 정당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요컨대 윤석열 일당이 이번에 저지른 사태는 유신군부의 친위 쿠데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명백한 내란 및 군사반란이다.
지금부터 할 일은 명확하다. 국회는 지체없이 탄핵소추 절차를 시작해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를 최대한 빨리 정지시켜야 한다. 여당이 이에 적극 협력하지 않는다면 내란과 군사반란의 하수인이라는 오명은 물론 법적 책임까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과 공수처, 군검찰 등은 내란죄와 군사반란죄의 주범, 공동정범, 종범 등으로서 윤석열 일당 등 관련자 전원을 즉시 체포하고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대통령직의 형사 소추 면책 특권도 내란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윤석열이 생중계로 떠든 화면과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국회에 대한 군의 침탈 등 증거는 차고 넘친다. 고발 여부를 따지지 말고 지금 즉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윤석열 일당은 지금 이성을 상실했고, 정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어떤 반헌법적 폭거를 다시 저지를지 모른다. 이렇게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헌, 위법 앞에서도 만약 검찰 등 수사기관이 머뭇거린다면? 국회는 즉시 특검을 발족시켜 검찰의 내란 공모 내지 방조 여부까지 수사해야 한다. 검찰이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키고 뒷받침해온 친위조직이라는 원죄를 벗으려면 적극적인 수사밖에 답이 없다.
아무도 이 내란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초현실적 사태처럼 여겨진다. ‘국민의힘’ 주류와 조선일보조차 황당해한다. 어쩌면 윤석열 자신조차 모를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술김에 그랬으리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릴 지경이다. 그게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렇게 넘어가기에 윤석열 일당이 저지른 일은 너무 엄청난 범죄이며 국내외에 끼친 해악이 너무 크다.
시스템이 좋다고 해도 돌연변이나 괴물의 출현을 아예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시스템은 좋은 시스템조차 아니다. 1987년에 수립된 지금의 헌정체제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는 정파를 떠나 이견이 없다. 아마 여기서 헛된 반란의 욕망이 싹텄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취약한 체제다. 그래도 우리는 이 취약한 누더기 민주주의를 버릴 수 없다. 이보다 덜 나쁜 대안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선거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공고해지거나 완성되지는 않는다. 좁게는 비상계엄의 요건 엄격화에서부터 넓게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심화에 이르기까지 이 헌정체제를 전면 수리해야 할 이유다.
위기의 순간이 되면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이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언론사 사이트를 열어서 동시에 지켜보았다. 조선일보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조차 비판 기사를 싣고 있던 사태의 초기 한동안 계엄 사실을 전하는 머리기사 한 건 외에 침묵을 지켰다. 눈치를 보았던 것일까?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비판 사설을 올렸다. 그리고 “조선일보도 윤석열을 버렸다”는 말들이 돌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보수의 진면목이다. 기억해야 한다.
나는 국회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잠시 망설였고, 그래서 오래도록 부끄럽게 됐다. 물론 나는 어떤 진영의 대표성도 없는 일개 서생일 뿐이다. 이 지면에 뒤늦게 비분강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마저 부끄럽다. 이런 내 모습, 우리 모습도 서로 기억해야 한다. 그 위중한 시간에 국회로 달려간 이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긴 밤 지새우며 소셜미디어에서 싸운 이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그들 모두에게 경의를 보낸다. 긴 밤이 지나갔다. 할 일들이 남았다.
조형근 사회학자 |
조형근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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