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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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축제와 같은 12월을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지만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 들어선 현재, 한강 작가는 가장 먼저 계엄의 밤을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
한강 작가는 이날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사회자가 한국의 정치 혼란을 언급하며 “이번주가 어떠셨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 소년이 온다 ’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된 계엄 상황에 대해 공부를 했었”다며 “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 1980년 5월과 이번 겨울의 차이라고 짚었다.
그는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를 쓰는” 모습,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 “총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는 잘 가라고 마치 아들들한테 하듯이 소리치는 모습”을 언급하며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3일 밤 국회에 투입됐던 “젊은 경찰”과 “젊은 군인”들이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이어 “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답변을 마무리했다.
지난 10월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언론 접촉이나 행사 참석을 최소화했던 한강 작가가 처음으로 전세계 독자와 대중을 향한 메시지를 낸 것이다.
세계 언론은 ‘민주주의 모범국’ 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사태를 연일 주요하게 보도하며 이날 회견에서 한강 작가가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촉각을 세웠다. 특히 그가 2014년 작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계엄령이 내려진 1980년 광주의 상흔을 세심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이날 한 스위스 언론도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한강 작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사실을 언급하며 표현의 자유 훼손에 대한 우려가 되지 않는지 물었다. 한 작가는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언어는 눌러 막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어떤 일이 있다 해도 계속 말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식주의자 ‘유해도서’ 낙인…“가슴 아프다”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를 둘러싼 국내의 오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최근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는 이 소설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이라며 초·중·고교 도서관 비치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소설은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려는 주인공 영혜를 남편과 언니, 형부의 시각에서 다룬다. 이에 대해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는 2019년 스페인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는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학생들이 (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며 한국과는 다른 스페인의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은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라며 “(책은)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게 이 책의 운명이란 생각도 든다. 책을 쓴 사람으로선 이 소설에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를 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던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또한 채식주의자가 “어떤 사람이 완벽하게 폭력을 거부하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녀(주인공 영혜)를 둘러싼 세계는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가하는 점”이라며 “영혜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녀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 세계의 폭력이 더 미쳐있는 것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 박물관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의자에는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2023년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서명 보인다. 스톡홀름/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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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희망’을 말한다
지금의 혼란과 실망에도, 기자회견 말미에서 한강 작가가 말한 건 ‘희망’이었다. 그는 “때로는 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대 문학의 의미를 되짚는 질문엔 “문학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을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행위다. 이를 반복하며 내적인 힘이 생기게 된다”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문학은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이날 일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노벨 위크(Nobel week·5∼12일)’ 활동에 참여한다. 그는 “처음엔 제게 쏟아지는 개인적 관심에 부담스러웠지만, 이 상은 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이제 다시 글을 쓸 준비가 되었다. 오늘 이후로 노벨 주간을 즐기려고 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파트에 가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말괄량이 삐삐’를 펴낸 스웨덴의 대표 아동문학 작가다.
한강 작가는 7일 수상자 강연을 마치고, 10일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스톡홀름/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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