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시리아 대사관 앞에서 한 남성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찢으려고 하고 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날 시리아를 떠나 러시아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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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를 24년간 철권통치해 온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반군의 수도 다마스쿠스 점령 직전인 8일(현지시간) 러시아로 망명했다. 알아사드의 해외 도피로 2대 54년째 이어진 아사드 가문의 독재 통치도 막을 내렸다. 지난달 27일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는 반군 연합이 전격 대공세에 나선 지 11일, 2011년 참혹한 내전이 시작된 지 13년 만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은 이날 크렘린궁 소식통을 인용해 “알아사드 대통령과 가족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며 “러시아는 인도주의적 고려에 따라 망명을 허가했다”고 보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알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게 망명이 허가됐다면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정부군을 돕는 등 이란과 함께 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왔다. 시리아 타르투스 등에 해군기지와 군용 비행장도 운영해왔다.
8일(현지시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 앞에서 한 여성이 시리아 반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아사드 정권 붕괴를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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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반군도 이날 아사드 정권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HTS 수장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는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알아사드는 시리아를 이란의 탐욕을 위한 농장으로 만들었다”며 “이번 승리는 이 지역, 그리고 이슬람 전체의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무함마드 가지 알잘랄리 시리아 총리를 중심으로 권력 이양을 위한 과도정부 수립 논의도 진행 중이다. 반군 연합은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위대한 시리아 혁명은 투쟁 단계에서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고, 혁명을 위해 희생한 국민들 몫에 알맞은 시리아를 건설하기 위한 단계에 들어섰다”며 정부 수립 의지를 밝혔다.
김영옥 기자 |
다만 과도정부에서 반군 간 주도권 경쟁에 따른 또 다른 내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라히브 하이젤 국제위기그룹 수석애널리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알졸라니가 자신의 통제 지역에서 종파와 민족에 대한 관용을 보인 건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과연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뿌리를 둔 HTS의 종교적 억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미국 CNN 방송은 8일(현지시간)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 하야트 타흐리르 알럄(HTS) 지도자와 한 독점 인터뷰를 공개했다. CNN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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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알졸라니는 이날 공개된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 HTS는 (아사드) 정권에 맞서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과업이 완료되면 거버넌스, 제도 구축 등의 상태로 전환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엄격한 이슬람 통치를 실시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선 “이슬람 통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중요한 건 제도 구축으로, 한 명이 아닌 제도적 통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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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S는 테러단체” 경계하는 미국
8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 붕괴와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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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는 아사드 정권 붕괴에 따른 중동 정세 급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국민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의 순간이 왔다”고 환영하면서도 “반군 그룹 일부는 끔찍한 인권 유린 및 테러 전력이 있다”고 경계했다. HTS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은 HTS의 목표가 근본주의적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실제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날 시리아 중부에 있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기지 75곳을 공습한 뒤 "시리아의 모든 단체는 IS와 어떤 식으로든 협력하거나 지원하는 경우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은 아사드 정권이 보유했던 화학무기가 엉뚱한 이들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도록 중동 국가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도 시리아를 공격했다.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9일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시리아에) 남은 화학무기, 장거리미사일, 로켓 등 전략무기 시스템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아사드 정권 붕괴는 정권을 지지한 이란과 헤즈볼라에 (이스라엘이) 타격을 가한 데 따른 직접적 결과”라며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귀환 합의 진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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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이란 “포용적 과도정부 수립해야”
지난 7월 러시아 크렘린궁을 방문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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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사드 정권 붕괴로 중동 교두보를 잃은 러시아와 반(反)이스라엘 연합 전선에 큰 공백이 생긴 이란은 과도정부 수립으로 영향력 유지를 꾀하려는 모양새다. 러시아 외교부는 “시리아에서 포용적 과도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며 “시리아 사회의 모든 민족과 종교 단체의 견해를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란 외교부도 “포용적 통치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시리아 모든 계층을 포함하는 국가적 대화가 시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의 요청으로 시리아 문제를 논의하는 비공개 긴급회의를 9일 오후에 연다고 AFP통신 등이 복수의 외교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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