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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반 아사드 시위대 폭격’ 항명 조종사, 43년 만에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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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퇴출을 선언한 8일 사람들이 다마스쿠스에서 탱크 위에 올라 감격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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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무너지면서 굳게 닫혀있던 시리아 감옥의 문도 열렸다.



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 등 시리아 반군은 다마스쿠스의 해방과 바샤르 아사드의 전복을 선언하고 모든 수감자들을 석방한다고 밝혔다. 실제 반군들은 다마스쿠스로 진격하는 길에 점령한 알레포와 홈스, 하마에서 수감자들을 풀어줬다.



“내 이름은 1100번이었다” 2019년 하마의 검문소에서 “테러” 혐의로 붙잡힌 뒤 알레포로 보내져 감옥 생활을 이어왔던 할라는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여전히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말했다. 지난달 29일 반군에 의해 알레포 중앙교도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풀려난 그는 “믿을 수 없었다”며 “그 기쁨은 엄청났다 (…)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고 했다.



할라는 시리아 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아사드의 감옥에 붙잡혀 있던 13만6614명 중 한 명이라고 방송은 소개했다. 지난 2013년 ‘시저’로 알려진 시리아군 내부 고발자가 빼낸 5만3000여장의 사진은 시리아 감옥 내 자행된 고문뿐 아니라 굶주림 등 가혹한 현실을 증명한다고 인권단체들은 주장했다.



마흔아홉살 아피 야신도 알레포의 감옥에서 반군에 의해 풀려났다. 그는 감옥 안에서 전투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들으며 반군이 승기를 잡자 5000여명의 수감자들이 “나가기 위해 창과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리아 북서부 해안 도시 바니야스에서 배를 만들던 대장장이 야신은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31년형을 받고 14년 동안 갇혀 있었다. 그는 “혹독한 신체적·정신적 고문을 수년간 받았다”고 방송에 말했다. 그는 2017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인간 도축장”이라고 규정한 악명 높은 세이드나야 감옥에서 1년을 보냈는데 그 안에서의 생활은 “형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곳에서) 본 광경들 죽을 때까지 내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권단체들은 세이드나야를 비롯해 시리아 정보기관이 운영하는 20여개 시설에서 비밀리에 처형이 이뤄져 왔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세이드나야에서는 매주 십여명씩 처형됐다는 인권단체들의 주장을 전하며 에이피(AP)통신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이곳에서만 1만3000명이 숨져나갔다는 추산을 전했다.



시리아 민방위대 ‘화이트 헬멧’은 9일 세이드나야 감옥에서 풀려난 생존자들로부터 지하에 비밀 감방에 사람들이 감금돼 있다는 제보를 받고 구출 작업에 나섰다고 비비시 방송은 전했다. 온라인에 널리 퍼진 영상 중 반군이 감옥 철창의 자물쇠를 부수는 소리에 놀라 소리를 지르는 여성 수감자들과 어린이들에게 반군이 “두려워 말라, 바샤르 아사드는 무너졌다!”로 말하는 모습도 이 감옥에서 찍힌 것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8일 다마스쿠스 중앙의 버스 정류장에는 풀려난 수감자들을 태운 버스와 자동차들이 이어졌다. 알아라비야 방송은 석방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가족과 14년 만에 아들을 품에 안는 노모의 모습을 전했다. 가디언은 1980년대 하페즈 아사드 정권 반대시위가 벌어졌던 하마에 폭격을 거부한 혐의로 갇힌 조종사 라그하드 타타리가 43년 만에 풀려났다고 보도했다. 열아홉에 정부를 비판하는 블로그 글을 올려 체포된 탈 말로우히는 생존이 확인됐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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