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 수석논설위원 |
지난 9월 ‘계엄 괴담과 국민 모독’이란 칼럼을 썼다. 야당에서 계엄령 준비 의혹을 제기했을 때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가능하다고 여긴다면 우리 국민에 대한 모독이란 내용이었다. 칼럼은 계엄이 불가능한 이유로, 우선 헌법 77조 5항에 따라 더불어민주당(170석)만으로도 계엄 해제 의결(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첫째로 군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 둘째로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셋째로 국제사회가 그냥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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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국민 목숨 위협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망가뜨려
이미 대통령 자격 잃어버린 것
그런데, 지난 3일 밤 10시23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다음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야당 국회의원들과 일부 여당 의원은 담을 넘어가며 필사적으로 국회에 모였다. 4일 새벽 1시 국회는 출석의원 190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했다. 그것으로 윤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은 무효가 됐다. 이 과정에서 국회에 투입된 MZ세대 군인들은 군 지휘부의 불법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 않았다. 국민도 용납하지 않았다. 많은 시민이 국회로 달려갔다. 그러곤 군경과 대치하며 자리를 지켰다. 시민들은 군 버스 앞에 드러누웠고 장갑차를 가로막았다. 휴대폰으로 현장을 생중계했다. 국제사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미디어가 실시간으로 속보를 띄웠다. 미 국무부는 즉각 “중대한 우려를 갖고 한국 상황 전개를 주시하고 있다”(커트 캠벨 부장관)고 밝혔다. 날이 밝자 윤석열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됐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완전히 실패했다. 칼럼 내용대로였다. 사실 계엄 불가 사유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상식적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이성이 마비돼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생각이 짧았다. ‘계엄 선포가 민주당에 대한 경고성’이라는 윤 대통령의 해명은 거짓말이다. 그는 그날 밤 의원들이 국회로 속속 모여들자 특수전사령관에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 그의 고교 후배인 방첩사령관은 정치인 체포와 구금시설을 준비 시켰다. 윤 대통령의 지시가 이행됐더라면 사회는 암흑천지가 됐을 것이다.
12·3 계엄 사태 이후 8일, 그사이 벌어진 일들은 국민을 다시 분노케 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한덕수 총리 체제’의 등장, 내년 2·3월로 넘어가는 퇴진 로드맵 등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얘기들이 튀어나왔다. 가장 기괴한 것은 위헌적 계엄을 실행한 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지닌 대통령 자리에 여전히 앉아 있다는 것이다. 국군통수권도 그에게 있다. 그는 조기 하야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 자격이 있는가.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는 자격 상실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국민의 목숨을 위협했다. 무장한 최정예 계엄군을 국회로, 선관위로 보냈다. 그들이 시민과 충돌하고 총탄을 쏘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공포스러운 일이다. 30여 년의 ‘문민통제’가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대통령 스스로 민주주의를 저버렸다. 국회 봉쇄, 계엄 포고령의 정치활동 금지와 언론·출판 통제 등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짓밟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 스스로 경제를 위험에 빠뜨렸다. 주가는 급락하고 환율은 치솟고 있다. 세계가 선망하던 대한민국이 졸지에 기피 국가가 됐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여차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태세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배반이었다. 검찰·경찰·공수처 수사가 내란 혐의 피의자인 대통령을 향하면서 나라는 대혼란으로 빠져들고, 국가 위상은 수직 추락하고 있다. 이런데도 윤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왜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있는가.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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