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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조태열 장관의 마지막 임무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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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위원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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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 통일외교팀 기자



취임사를 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볼 수 있다. 장관의 취임사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 실무와 맞닥뜨리지 않은 시기인 만큼 취임사는 대부분 “우리 외교를 경쟁력 있게 바꿔놓겠다” 등 거시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그렇기에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취임사를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난 1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취임사를 심드렁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마지막 부분에, 그가 후배 직원들을 향해 남긴 말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젊은 직원들의 의원면직 사례가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장관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업무 성취도를 높이고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취임사가 대외공표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직원들이 겪는 어려움, 그들이 떠나는 사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한 조 장관의 발언은 다소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1979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조 장관의 후배에 대한 애틋함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모든 외교관의 미래를 뒤흔들 수 있는 백척간두의 상황에 섰다. 우선, 12·3 내란사태로 한국 외교 신임도는 땅에 떨어졌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작심한 듯 ‘오판’ ‘불법’ 같은 강한 언사로 한국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고, 러시아는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12·3 내란사태)은 한반도에 긴장과 불안정을 초래하는 주체가 한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태가 몇달 더 지속된다면 더 이상 한국의 외교적 자산은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공직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추락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무위원은 비상계엄이 논의된 지난 3일 밤 국무회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고 “나는 적극 가담자가 아니다”라며 발뺌하기 바쁘다. 많은 것을 포기한 채 국가를 대표해 외교를 책임진다는 공명심으로 살아가는 외교부 직원들에게 “내란의 동조자다”라는 시민들의 시선은 씻을 수 없는 상처다.



물론, 조 장관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단순히 반대 의견을 낸 것을 내세우며 자기방어를 해서는 안 된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어떤 발언을 했고, 이에 대해 조 장관과 각 국무위원이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 그 상황을 자세히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 당시 왜 직을 던져서라도 위헌적인 내란을 막지 못했는지 해명하고 사죄해야 한다.



또한 조 장관은 남은 임기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위법적인 모든 지시를 거부하고 막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탄핵 표결을 앞둔 12일에도 다시 한번 담화를 내어 중국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하며 한-중 관계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발언을 반복했다. 윤 대통령이 외교에 손대도록 방치하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저지해야 한다.



이제 조 장관에게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군과 경찰 등 많은 조직들이 리더의 잘못된 선택으로 ‘내란 동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모든 국민의 운명을 책임지라는 거창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앞으로 20년 더 외교관 생활을 할 후배들에게 ‘내란 동조자’라는 굴레는 씌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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