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다] 전두환 (1931~2021)
전두환은 두번의 쿠데타를 했다. 첫번째 쿠데타는 1979년 12월12일 밤부터 12월13일까지. 이른바 ‘12·12 군사반란’. “박정희가 죽은 10·26 사건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연루?” 그때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이 내건 군사반란의 명분이다. 사실은 전두환 일당이 군부를 장악하려는 속셈이었다.
12월12일 저녁부터 전두환은 바삐 움직인다.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 체포를 재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처음에는 거절당한다. 거절에 아랑곳없이 전두환은 군대를 불법 동원해 정승화를 체포한다. 13일 새벽에 전두환의 부하들이 장태완 수도방위사령관까지 잡아들인다. 최규하도 결국 굴복해, 사후 재가한다. 이렇게 하여 전두환은 군부의 최고 실력자가 된다.
1980년 봄,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난다. 5월15일에는 서울역에서 학생 10만명이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군부와 충돌을 우려한 학생 운동 지도부는 5월16일에 시위를 멈춘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
전두환은 멈추지 않았다. 5월17일에 두번째 쿠데타를 한다. 권력을 잡은 자의 내란이었다. 낮에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고 밤에 비상계엄을 확대한다. 5월18일 새벽에 국회를 점령한다. 김대중 등 정치인 수천명을 구금한다. 서울에서 계엄군은 국회의원이 국회로 등원하지 못하게 막았다. 광주에서 계엄군은 시위대를 과잉 진압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된다. 수많은 시민이 전두환이 보낸 군인들에게 죽임당한다. 제5공화국의 섬뜩한 시작이다.
1993년에 정승화와 장태완이 반란죄로, 1994년에는 5·18 피해자들이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죄로 전두환을 고소한다.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기소할 수 없다’며 모른 척했다. 전두환을 처벌하라는 시위가 커진 뒤 1995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재수사 지시를 하고서야 전두환을 수사했다. 검찰이 내란 수사에 신뢰를 못 받는 이유가 있다.
전두환의 보안사는 기무사가 되었다가 안보지원사가 되었다가 방첩사가 된다. ‘12·3 내란사태’의 중심에 있는 방첩사의 복도에는 전두환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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