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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분노의 제구를 가다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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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함경도 명천이 고향인 이인관은 일본 유학 뒤 귀국해 1932년 청진철도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경기공업전문(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장을 끝으로 33년간 잡았던 교편을 내려놓은 그는 1965년 서울 서대문구(현 은평구) 응암동에 학교를 세웠다. 실업계 공민학교로 시작한 학교는 1973년 인문계 고교로 전환했다. 충암의 출발이다. ‘충암(冲岩)’은 이인관의 아호다. 야구 명문 인천고·성동고 교장을 지낸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70년 충암고 야구부를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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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였던 2021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모교인 충암고에서 야구부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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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우승은 1977년 봉황기에서다. 결승전에서 광주진흥고를 5-0으로 물리쳤다. 우승 주역은 당시 36살 김성근 감독, 그리고 최우수 선수에 뽑힌 포수 조범현이다. 전국대회에서 10회(청룡기 1회, 대통령배 2회, 황금사자기 3회, 봉황대기 4회) 우승했다. 거쳐 간 선수 면면도 쟁쟁하다. 프로야구 원년(1982년) 멤버 조범현·정영기를 필두로, 장호연·류지현·심재학·신윤호·박명환·장성호·김주찬·홍상삼 등이 충암 출신이다. 문성현(키움)·류지혁(삼성)·고우석(마이애미)·윤영철(KIA) 등은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충암 하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둑이다. 충암(충암학원) 출신 프로기사를 일컫는 이른바 ‘충암사단’이 바둑 용어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다. 대표 기사라면 1990년대 세계 바둑을 평정한 이창호 9단일 터다. 정수현·조대현·양재호·유창혁·조한승·최철한·박영훈·박정환 9단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충암사단 프로기사 단수를 더하면 1100단이 넘는다. 박지은·조혜연·최정·오유진 9단 등은 충암사단에 속하는 여성기사다. 부친(이인관)으로부터 충암학원을 이어받은 이홍식 전 한국기원 이사장이 1971년 바둑부를 창단한 게 그 시작이었다.

선수들과 학생들은 스포츠를 통해 공정·헌신·협력 등의 덕목을 배웠고, 충암은 한국 야구와 바둑의 요람이자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충암이 2024년 연말 온 나라의 손가락질 대상으로 전락했다. 한밤중에 군홧발로 국회를 짓밟고, 시민을 향해 총구를 돌린 ‘12·3 비상계엄 사태’ 주동자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등이 이 학교 출신, 이른바 ‘충암파’라서다. 시민들의 비난·항의·협박성 전화가 학교에 빗발쳤다. 일부 학생은 교복 차림으로 다니다 조롱·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학생 안전을 염려한 학교 측이 당분간 교복을 입지 않게 했을 정도다. 9일에는 교장과 학부모회장이 국회를 찾아 어려움을 토로했다. 10일에는 학생회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과한 뒤 “학생들이 안전하게 미래를 꿈꾸고 펼쳐나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학생과 학교가 무슨 잘못인가. 이들도 피해자다. 비난하고 단죄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 분노도 제구력이 중요하고, 비난도 착수점 계산이 필요하다.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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