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
윤석열 대통령의 6시간짜리 계엄령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의 역대 계엄령이 갖는 의미와 한반도 정세에 주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이번 계엄령으로 인한 위기는 정치·외교 판단력 부재를 보여준다. 정상적 국회 운영을 방해해온 야당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후세 역사는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윤 대통령이 잘못된 카드를 선택했다고 볼 것이다.
모두가 윤 대통령의 운명에 주목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국제 정세에 대한 원칙 기반의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의 위기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다.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광범위한 분열과 역기능 패턴의 연장선에 있다. 이런 현상은 북한·러시아·중국·이란 등 독재 국가들이 위험한 불놀이를 할 여지를 줄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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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의 판단력 부재 드러내
독재국가는 오판의 위험에 노출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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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로버트 케이건 선임연구위원은 “독재 국가는 계속해서 ‘미국이라는 덫’에 걸려든다”고 설파했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약점인 것처럼 잘못 인식해 이를 도발의 기회로 삼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한다는 것이다.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카이저) 빌헬름 2세는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한 미국을 보고 대서양에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감행했으나 미국 참전으로 결국 대패했다. 나치 정권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과 일본제국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총리는 미국 국내에서 벌어진 고립주의 논쟁을 미국 국력의 약화로 오판해 진주만을 공격하고 대미 선전포고를 했다. 김일성도 1950년 비슷한 어리석음을 범해 6·25전쟁을 도발했다. 자유 세계의 결의를 오판해 참혹한 결과를 맞았다.
물론 그 시절보다 오늘날 자유 세계의 억지력은 훨씬 강하다. 그러나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캐나다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동을 보며 전체주의 국가들이 이를 약점이나 결단력 부재로 오판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트럼프 2기는 시작하기 전부터 내각 인선과 동맹을 대상으로 한 관세 위협으로 미국에서 큰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한국 국회가 계엄령을 해제할 때 프랑스에서는 야당의 불신임으로 내각이 총사퇴했다. 독일에서는 몇 주 전에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끌던 ‘신호등 연정’이 무너졌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지난 10월 조기 총선 이후 취임 두 달 만에 식물 총리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주도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노동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을 전망이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캐나다 집권 보수당도 내년 선거에서 패배가 예상된다.
이들 국가에서 집권당의 정치색은 다양하다. 좌우 이념에 상관없이 이들 국가의 집권당은 물가 폭등과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제도 불신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런데 사악한 국내외 행위자들이 당파적 SNS와 가짜뉴스로 이런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한국 상황을 볼 때 이러한 모든 정치적 격동은 국가의 의지와 전략적 방향에 대한 여러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한국이 역내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지속적인 역할을 할 여지가 있을까. 앞으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탄핵하고 나아가 성공적인 인도·태평양전략을 폐기하거나 중국과 북한만 좋은 일을 시킬 한·일 관계 경색을 추진할까. 이번 계엄령 선포 이후 한국군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주요 민주주의 국가의 규범적·제도적 토대의 뿌리는 깊고, 이를 결속할 동맹 체제도 강력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국민의 90%가 미국과의 동맹을 지지하며 이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도 강력하다. 하지만 러시아·중국·북한 등 독재 국가는 자유 세계가 내향적이고 약하며 뒤숭숭해 틈을 보일 경우 세력 확장을 위한 도박에 나설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한국은 여야 정치권의 향후 행보가 국제 정세에 끼칠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국내 세력들의 과도한 경쟁이 국익보다 자파 세력의 승리에만 몰두할 때 이러한 분열을 활용하려는 강대국에 의해 위험에 직면했던 과거가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기야말로 세계 안정과 번영의 원동력으로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한국 국민의 저력을 보여줄 때다. 전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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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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