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한우 곰탕
서울 송파구 ‘청류’의 얼큰한 한우 곰탕.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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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을 끼고 자리한 문정동은 점심시간마다 달리기 경주가 열린다. 그 경주는 100m 달리기보다는 장애물 달리기에 가깝다. 2010년까지만 해도 비닐하우스가 있던 동네다. 서울공항이 가깝고 그린벨트까지 묶여 있던 문정동이 법조타운으로 개발된 것이 얼마 전이다. 전위예술을 하듯 지그재그로 쌓아 올린 건물들은 어떤 차분한 계획이 아니라 무작위적 욕망의 덩어리 같았다.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직장인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식당은 빨리 먹고 헤어질 예정 속에 ‘가성비’ 같은 단순한 목표와 무기로 서로를 대했다. 계산을 정확히 하는 것이 흠이 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냉정한 셈이 끝난 후에도 마음이 온전히 차오르지 않는 이유는 늘 아리송했다.
서울 송파구 ‘청류’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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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류’라는 식당은 빌딩 2층 어정쩡한 곳에 있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건물을 쭉 한 바퀴 돌아가야 입구가 나왔다. 번잡한 거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메뉴판에서 냉면이 보였다. 영하로 떨어진 날에 냉면을 시키는 데는 약간 용기가 필요했다. “냉면은 겨울이 제맛이야”라고 혼잣말하며 오기를 부렸다. 사기그릇에 담긴 냉면은 보기만 해도 몸이 떨렸다. 무거운 그릇을 들어 육수부터 마셨다. 소고기를 얼마나 넣어 끓였는지 국물만 마시는데도 고기를 씹는 것 같았다.
메밀을 9할 섞어 만들었다는 면은 젓가락으로 들어 올릴 때 손아귀에 힘을 줘야 할 정도로 무게가 있었다. 입에 한가득 면을 욱여넣었다. 쇠를 핥는 듯 차가운 느낌이 드는 메밀 향이 면을 목구멍으로 씹어 넘길 때마다 메아리처럼 퍼져갔다. 한 그릇을 다 비울 때쯤에는 속이 든든해지면서 몸이 단단해지고 아랫목 같은 열기마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아마 추위를 차가운 음식으로 이겨내는 극기(克己) 때문이겠지만 적지 않은 양을 담아 올린 소고기 고명 덕분인 듯도 했다.
이북식 김치말이 냉면은 김치 국물과 육수를 섞고 채를 썬 배와 소고기를 잔뜩 올렸다. 시큼하고 시원한 맛이 골격을 잡고 그 위에 고소한 맛이 화사하게 번졌다. 담담한 메밀면을 육수와 함께 먹으니 맛과 맛이 뱀처럼 얽혀서 승패를 겨루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칼을 휘두르는 듯 빈틈이 없는 냉면에 비해 김치말이 냉면은 맛이 더욱 화려하고 고소한 맛이 펼쳐놓는 온기 덕에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먹기가 한결 수월했다.
서울 송파구 ‘청류’의 얼큰한 한우 곰탕.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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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로 온 손님들은 아무래도 냉면보다는 곰탕에 손이 가는 모양이었다. 밥을 토렴하여 깔고 위에 육수를 부은 곰탕은 고명이 수북했다. 숟가락질을 하면 밥보다 오히려 고명이 많이 올라왔다. 고명은 손으로 일일이 찢은 소고기와 편으로 친 것이 반반 정도 섞여 있었다. 맑은 육수는 바로 먹어도 적당한 정도로 온도가 올라 있었다. 육수 농도는 얼음에 구멍을 뚫고 떠 마신 시냇물처럼 맑았지만 밀도가 있었다. 채소 등을 넣고 끓여서 단맛을 뽑아낸 종류가 아니었다. 단맛이 섞이면 먹기는 수월하지만 여운의 질감이 다르다. 그보다는 잡내를 없애는 정도로 채소를 넣고 대신 고기양을 늘려 맛이 개운하고 또 힘이 있었다.
매운 곰탕은 여기에 고추기름을 더했다. 소의 콩팥 주위에 낀 두태 기름으로 고춧가루와 향신료를 볶아 우려낸 고추기름은 향이 메케하면서도 동물성 기름 특유의 무게감 있는 고소함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포클레인으로 흙을 퍼 담듯 국밥을 먹었다. 단전 어딘가 저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열기에 겉옷을 벗었다.
고기를 먹다 지쳐 고개를 드니 주인장이 테이블을 돌며 ‘모자라는 것이 없냐’고 묻고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웃는 얼굴로 ‘괜찮다’ 말했다. 그 웃음의 연유를 헤아리기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이익과 손해라는 기준으로 사람들 대하지 않는 것. 누군가를 배불리 먹이고 싶은 마음, 그저 마음에 들었으면 하는 어린애 같은 그 모습이 우리는 늘 그리울 뿐이다. 그 마음을 가늠할 필요도 없었다. 넉넉히 담긴 곰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청류: 얼큰한 한우 곰탕 1만6000원, 물냉면 1만6000원, 김치말이 냉면 1만6000원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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