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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토)

[데스크칼럼] 왜 증권 기자들은 反기업 정서가 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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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안재만 조선비즈 증권부장




증권부를 맡고 있지만 대기업 재무팀이나 IR팀, 홍보팀도 자주 만난다. 사모펀드가 여러 영역에서 맹활약하면서, 자본시장 담당 기자가 커버해야 하는 영역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들로부터 재미있는 평을 들었다. “증권부 기자가 반기업 정서가 더 강하다”는 얘기였다. 기업이 성장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인데, 증권 기자들이 유독 기사를 날카롭게 쓴다는 것이다.

일단 반박부터 했다. 주식시장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소액주주들이 억울한 사례가 하루에 하나는 꼭 나온다고. 툭하면 알짜 사업 부문을 분할하고(추후 재상장하려는 것일 게다), 폭탄 유상증자를 기습 공시하고, 최대주주만 유상증자 책임에서 쏙 빠진다거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식하곤 한다고. 상장할 때는 해외 유명 기업을 끌어와 공모가를 잔뜩 끌어 올리고, 이 과정에서 뒤에 숨어 차익을 독식하곤 했다고.

이는 수많은 증권 기자가 주주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기자 모임에서 타사 기자들에게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느냐고 물었는데,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개인의’ 생각을 밝혔다. 보수와 진보, 경제지와 일간지를 가리지 않고 대체로 그랬다. 정치에 비유하자면 당론은 상법 개정안 반대이나, 개개인 의견은 찬성인 것과 같다고나 할까.

재계가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으나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의 자책골로 식물 정권이 됐으니,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상법 개정안 또한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1일 기자들에게 “상법 개정을 계속 추진한다. 내란 사태 때문에 예정돼 있었던 재계 투자자들과의 정책 디베이트가 취소·연기된 바 있는데, 다시 일정을 잡아서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 생각으로 상법 개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법으로 모든 것을 풀어갈 수는 없다. 법의 빈틈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것이 현재의 기업들이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을 내버려두면, 편법은 점점 더 진화할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점도 들여다봐 줬으면 한다.

LG화학은 왜 LG에너지솔루션을 떼어내야 했을까. LG화학 본체로 지속해서 자금을 조달하면 지배력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선진국들은 모두 어느 정도 수준으로 경영권 보호 장치가 있다. 미국에 상장해 있는 쿠팡 김범석 의장은 지분율은 8.8%밖에 되지 않지만, 의결권 지분율은 73.7%에 달한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6개월 사이에 연달아 유상증자를 추진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처럼 욕을 들어먹지는 않았다. 가업 승계 때만이라도 증여세, 상속세를 낮춰준다면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돼 온 편법 승계 꼼수는 훨씬 덜 나왔을 것이다.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밀어붙이기만 하면, 기업은 더 격렬히 저항할 것이고 우리 사회의 손실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보고 있노라면 민주당도 불통인 것은 마찬가지다. 모쪼록 민주당이 곧 있을 재계와의 간담회에서 귀를 한껏 열어줬으면 한다.

안재만 증권부장(hoonp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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