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젊은 남성의 분노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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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뉴스는 이제 그만, 이슈의 맥락을 읽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트럼프 지지자'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이 2021년 1월 미국 국회의사당에 폭동을 일으킨 이들의 모습이다. 민주주의가 자리잡힌 지 오래된 선진국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정 선거'라 주장하며 국회에 난입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나오는 광신도 집단인 화살촉 무리나 영화 <조커>에 나오는 조커의 지지자들처럼 트럼프 지지자들의 모습은 혼돈 그 자체였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인데, 왜 이들은 부정 선거 음모론을 믿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려고 할까. 이번 뉴스쉽에서는 극우 정치에 대해 다루려 한다.
어떤 사람이 '미치광이'를 지지하고 투표하는가
극우 정치는 적과 아군을 구분한다. 정치는 전쟁이 아닌 만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다름을 인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극우 정치는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을 공동체 안에 있어서는 안 될, 몰아내야 할 적으로 상정한다. 멀리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말살시키려 했고, 가까이는 트럼프가 이민자들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 국내에서 극우 정치는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반국가세력,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고 몰아내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극우 정치는 보수 정치와 다르다. 보수 정치는 기존에 가진 걸 지키고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하려고 한다. 개선이 필요하면 사회에 혼란이 오지 않도록 필요한 만큼만 절제해서 변화를 하고자 한다. 그런데 극우 정치는 지금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기득권을 타파하자는 구호로부터 출발한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자유무역과 달러 시스템, '세계의 경찰' 역할 등 미국이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버리자고 말한다. 그 기득권을 통해 미국이 성장해 왔던 역사는 잊은 채 지금 현재의 경제적 이득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인종의 용광로였던 미국의 포용력과 백수십 년 넘게 쌓아온 언론과 민주주의 시스템마저 어느 정도 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선 전 선거운동을 위한 구호와 달리 트럼프가 실제 집권한 뒤에 어떤 정책을 펼칠지는 다른 문제다.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극우 정치의 주장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그런데 왜 누군가는 극우 정치에 마음을 뺏기게 될까.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하며 '길 위의 철학자'로 불린 에릭 호퍼는 저서 「맹신자들」에서 설명한다. 그는 극우 정치 같은 대중운동의 맹신자들이 되는 이들은 주로 빈민, 부적응자, 소수자, 무능한 사람들, 따분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에릭 호퍼 「맹신자들」 중"한 국가에서 가장 열등한 구성원들이 그 과정(극단적인 대중운동)에서 두드러진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현재 상태를 털끝만치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과 현재를 치유할 수 없이 망가진 것으로 여기며 인생이든 현재든 언제든지 내버리고 파괴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그들의 무모함과, 혼돈과 무정부 의지의 원천이다. 그들은 또한 이미 망가져 버린 의미 없는 자신을 영혼을 휘젓는 눈부신 공동체적 사명에 바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생략) ...대중운동이 추종자들을 끌어들이고 붙들어둘 수 있는 것은 자기발전 욕구를 충족시켜서가 아니라 자기부정 열망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엔 '젊은 남성'의 지지가 있었다
AP통신에 따르면 30세 미만 남성 중 절반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4년 전에는 같은 청년 남성 중 절반 이상이 바이든에 투표했었는데 이번 투표에서는 트럼프로 돌아선 것이다. 백인 청년 남성의 경우 10명 중에 6명이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흑인 청년 남성의 경우 해리스 지지가 높았지만 3분의 1은 트럼프를 지지했는데, 흑인 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해 왔고 해리스도 흑인 후보였던 걸 감안하면 트럼프는 인종을 뛰어넘어 청년 남성들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청년 남성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선거운동 전략을 사용했다. 2030 남성이 많이 듣는 UFC 해설자 조 로건의 팟캐스트(The Joe Rogan Experience)에 트럼프가 출연하도록 조언했다.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였던 J.D. 밴스도 이 팟캐스트에 나가 젊은 남성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는데, 민주당의 해리스는 출연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해리스는 CNN이나 CBS처럼 '레거시 미디어'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CNN 인터뷰를 보는 이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집토끼'일 가능성이 높은데, 해리스는 이런 매체를 택하는 관성적인 선택을 했던 반면 주류 언론에 부정적이었던 트럼프는 2030 청년 남성이 많이 듣는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선택을 했다. 3시간짜리 트럼프의 인터뷰 영상은 10시간 만에 조회수 1천만 회를 넘어 흥행했고, 지금은 5천만 회를 넘어섰다. 이 팟캐스트 출연을 비롯해 트럼프의 청년 남성 사로잡기 전략이 먹혀들면서 대선에서 이들의 표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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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억까' 앞에 선 젊은 남성의 불안
자신들이 보는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비트코인을 지지한다는 이유로만 트럼프가 2030 청년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다. 2030 청년, 특히 청년 남성이 극우 정치를 지지하는 데에는 최근 들어 산업 구조의 변화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여성 청년은 노동시장에서 전통적인 약자였다. 전통적인 산업 구조에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은 남성들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전후를 기점으로 남성 청년들이 불안정한 일자리에 놓여있는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2022년까지 20년간 국내 청년층의 불안정 노동을 분석한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저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 따르면 남성 청년들은 2008년 전후 노동시장에서 매우 불안정한 집단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성 청년의 경우 기존보다 노동시장 진입이 늘어나고 중간 수준의 숙련도가 필요한 서비스 직군에 흡수되게 되었는데, 제조업이 주춤하면서 남성 청년의 취업 기회는 줄어든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플랫폼 노동이 확대되면서 배달, 택배, 운수 같은 불안정 노동에 남성 청년들의 진입이 늘어났다.
이러한 경향성은 미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스카이 올멍과 토드 프랑케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 청년은 중간 정도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는 이들이 많은 반면, 남성 청년은 양극화된다. 즉, 2030 청년 남성 중 상당 부분은 대기업 정규직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젊은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비율로 불안정한 일자리로 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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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 경제가 불안정하면 위험한 정치에 이끌린다. 제조업이 몰락하며 옛날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는 선진국의 도태된 청년 남성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적은 돈을 벌며 근근이 살아가게 된다. 지금도 끝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에서도 혁신을 이끌고 고연봉을 받는 것은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에 일자리를 가진 이들이다. 쇠락한 제조업 도시, 러스트벨트에 머물며 살아가는 젊은 남성들에게 그들의 수억대 연봉은 오히려 박탈감을 가져온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 내몰렸는데 현대 사회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백인이라는 이유로 기득권을 가진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세상이 자신을 '억까(억지로 비난함)'한다는 박탈감과 좌절감을 가진 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분노가 축적되면서, 앞서 에릭 호퍼가 언급한 극우 정치의 '맹신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꿈틀대는 '극우 정치'
국내에도 극우 정치는 존재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 극우 정치는 한동안 주로 노년층의 전유물이었다. 2016~17년 사이 박근혜 탄핵 국면의 태극기부대가 대표적이다. 노년층을 중심으로 거리에 나온 '아스팔트 우파'는 탄핵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부정했다. 태블릿 PC로 촉발된 수사도 조작됐다며 검찰과 법원 등 사법 시스템을 부정했다. 더 나아가 탄핵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도 부정 선거를 주장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난하고 음모론을 한동안 펼쳤다.
이런 목소리는 합리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민이라면 쉽게 걸러낼 수 있다. 때문에 태극기부대의 목소리는 소수의 목소리에 그쳤고, 보수 정치권에서도 탄핵 이후 한동안 이들과 거리두기를 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김문수, 신원식 등 태극기집회에 활동했던 정치인을 내각에 들어오게 하기 전까지는 보수 정치권이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태극기부대와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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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극우 정치에 노년층이 아닌 젊은 남성이 등장한 건 2014년 세월호 사건을 전후로 '일베'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 안에 머물며,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일밍아웃'(자신이 일베를 한다고 밝히는 것)하기 어려운 정도의 하위 문화에 그쳤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로 오면서 2030 남성은 주요 선거마다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보였고, 극우 정치에 이끌리는 이들도 나타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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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노년층 극우'는 경제 이슈나 시민과 삶과는 동떨어진 정치 집단의 이슈에 몰두했다. 탄핵 반대와 부정 선거, 검찰의 수사 같은 이슈는 사실 집권층의 진영 논리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서민층 노인 인구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진다. 즉, 노년층 극우는 '관제 데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 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 우리 편 정치 집단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 외에는 목적성이 비어 있다. 반국가세력이나 공산전체주의로부터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목적인데, 시대적 인식이 뒤처져 있는 주장인 만큼 다수의 공감을 사기 힘든 목소리였다.
반면 '청년층 극우'는 목적성이 뚜렷하다. 유럽과 미국에서 극우 정치는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자양분으로 해 이민자를 반대하거나 몰아내야 한다거나 자유무역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경제와 일자리 이슈와 연계된 주장인 만큼,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상당수가 극우적인 주장에 혹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청년 남성들이 이끌린 '극우 포퓰리즘'은 경제, 문화적 이슈와 연계돼 있다. 실제 삶에서 중요한 문제들과 엮여 있어 호소력이 있다는 뜻이다. 강남역에서 한 여성의 묻지 마 살해 사건이 일어난 뒤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시위가 일어났는데, 청년 남성들의 목소리는 이에 대한 '백래쉬(반동)'로 나타났다. 청년 극우의 목소리는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 교통권 시위를 하자 이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났고, 문재인 정부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고 하자 '공정하지 않다'는 반발로 나타나기도 했다.
즉, 국내에서 최근 커지는 청년 남성의 '극우 포퓰리즘'은 기존의 태극기부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청년 남성이 극우 정치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저성장 사회로 오면서 제조업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노동을 통해 번 월급을 아껴가며 저축해서는 수십 년이 걸려도 서울에 아파트를 살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지방으로 가서 살자니 지방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경제적으로는 비트코인과 TQQQ(나스닥 3배 레버리지 ETF)처럼 리스크가 큰 투자에 몰두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도박과 같은 위험한 투자로 보이지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앞으로도 가질 것이 많지 않은 청년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이것 외에는 없다. 정치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사회를 뒤엎을 수 있는 극우 정치를 지지하는 것이 불안정한 청년에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기존의 제도권 정치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극우 포퓰리즘은 득세하게 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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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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