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열어 사과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했다. 대통령이 탄핵됐으니, 여당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모양새는 그게 아니다. 대표는 버티려 했고, 친윤석열계는 탄핵 책임을 한 대표에게 다 뒤집어씌워 쫓아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됐는데, 오히려 ‘친윤계’는 기세등등하다. 엽기적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안이 가결되자, “저의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소주성’(소득주도성장)까지 들어가며 지난 정부를 비판하고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는 무너져 있었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2017년 3월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가 출석을 통보하자, 지정된 날에 검찰에 출두했다. 2024년 윤 대통령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15일 출석을 통보했으나 불응했다.
2016년 12월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때는 당시 새누리당 의석이 128석, 새누리당 찬성표는 63표(반대 56표)로 추정된다. 새누리당 의원 49.2%가 찬성표를 던졌다. 2024년 윤 대통령에게는 국민의힘에서 찬성 12표(11.1%), 반대 85표(78.7%)다. 2016년엔 자유투표, 이번엔 당론 부결이었다. 2016년 박근혜 혐의는 ‘국정농단’, 2024년 윤석열 혐의는 ‘내란’이다. 비교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이러는가.
왜곡된 학습효과 탓이다. 2016년 탄핵을 기점으로, 보수 정당은 소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탈각하지 못한 채 점점 과거·극우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모두가 이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집착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 뜻과는 점점 어긋나고 있다. 그 결과, 무능하고 시대착오적인 인사가 점점 주류를 형성한다. 마지막으로 목적론적 사고방식에 빠져 있다. 2022년 대선에서 야당에 맞설 마땅한 후보가 없자, 바깥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데려왔다. 정치 경험도 없고, 보수 정당에 대한 이해도 없고, 개인 검증도 제대로 안 됐지만,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이었다. 국민의힘은 이전에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데려오려 한다든지, ‘무조건 승리’에만 목을 맬 때가 많았다. 이런 식이라면 정당은 필요없다. 그때그때 여론조사 1위 인사를 영입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업둥이로 데려온 윤석열은 보수 정당을 두번에 걸쳐 궤멸시켰다. 처음엔 바깥에서, 두번째는 안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당 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배웅을 나온 권성동 원내대표가 포옹을 하려 하자 거절하는 듯한 모습으로 회견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금 국민의힘을 보면, 앞으로도 자생적으로 혁신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미래를 기득권 영남·강남 소수 정당으로 잡은 듯하다. ‘광우병 직전’ 2008년 총선이 한국 보수의 정점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압승 등 연전연승이었다. 이후 보수는 점점 오그라들었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민주주의를 장착하고, 법치와 전통을 수호하는 보수 정당으로 나아가기보단 전리품 다툼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동종교배로만 나아갔다.
2008년 보수 성향 무소속과 친박연대를 포함한 범한나라당 지역구 149석 가운데 수도권(서울·인천·경기) 당선자가 55.0%(82석), 영남이 42.3%(63석)였다. 2016년엔 범새누리당 지역구 112석 가운데 수도권은 33.0%(37석)로 쪼그라들었고, 영남은 46.4%(52석)였다. ‘진박 공천’ 때문이다. 그리고 2024년 총선 국민의힘 지역구 의석은 수도권 21.1%(19석)로 8년 새 또 절반이 줄었다. 대신 영남은 65.6%(59석)로 의석도 비중도 늘어났다. 이런 정당에 미래는 없다. 앞으로 국민의힘 지도부는 영남이거나 영남 주류 추종 세력만이 가능할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지난번 ‘윤석열’처럼 대선 깜짝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나 총선에선 다수당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어찌어찌 정권을 잡더라도, 허약하고 무능한 정권이 될 것이다. 윤석열 같은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내란’까지 일으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오죽하면 그랬겠나’라며 민주당 탓을 하는데, 이 구조를 끊지 않는 한 ‘오죽하면’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의문은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게 합당한가 하는 점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12월10~12일 조사)를 보면, 75%가 ‘탄핵’에 찬성한다. 보수 성향 응답자 중에서도 46%가 탄핵을 지지했다. 국민의힘 의원은 11.1%만이 탄핵에 찬성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극우 정당 아닌가. 극우 정당이 전체 의석의 36%를 차지하는 게 민의에 맞는 것인가.
권태호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