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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노벨상 작가 오르한 파묵 “지금 한국인들의 분노, 바람에 존경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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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튀르키예 작가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72)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윤석열 반대’ 여론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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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의 75%가 대통령에게 화를 내고 있지요.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상황을 노트에 적겠지요. (…) 한국인들 75%의 바람에 존경을 표합니다,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길 바랍니다.”



튀르키예에 노벨문학상을 처음 안긴 작가 오르한 파묵(72)이 신간 출간을 계기로 국내 기자와 가진 집단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묵은 인터뷰 회신 뒤에야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들었겠다.



상류층 출신 파묵은 20대가 되기까지 화가를 꿈꾸다 대학 건축학과를 중퇴하고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지금껏 문학에 전념해 왔다. 구태와 관습에 대한 분노, 실험적 탈피가 그의 문학적 동력이었다. 가령 터키 근현대사를 다룬 그의 첫 소설(‘제브데트 씨의 아들들’, 1979)은 출간까지 3년이 걸려야 했다. 당시 대세는 농촌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쓴 정치소설 ‘눈’(2002), “의도와 달리 정치 소설이 된” ‘페스트의 밤’(2021), “정치소설로 시작했으나 예술사 소설이 된” ‘내 이름은 빨강’(1998)에서 보듯, 정치는 일상과 예술 따라서 문학과 분리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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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슬리 사원이 담긴 오래된 엽서를 보고 나 자신을 억누를 수 없었다”며 오르한 파묵이 그린 그림. 그는 상류층 건축가 집안 출신으로 이스탄불 공과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했지만 중퇴했다.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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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먼 산의 기억’은 오르한 파묵이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뒤인 2009년부터 몰스킨 수첩을 휴대하며 시시각각 새긴 14년치 그림과 글로 빼곡한 ‘그림일기’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말마따나, 그림이 몸통에 가깝다. 다만 작품 소회, 일상의 단상, 문학·역사관, 가족과 조국에 대한 이야기 등을 흘려보내기 어렵다. “나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고, 매우 부끄러웠다. 아무도 내 그림을 보지 않았으면 해서 공책에 그렸다”는 일기 속 마음도 “이 공책은 나에게 끊임없이 쓸 수 있는, 살면서 느꼈던 모든 것에 대해 글을 쓰는-나는 그러고 싶다-행복을 선사한다”에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쓸 것이다”까지로 향해 간다.



-일기에 쓰고 그릴 때의 감정은?



“일기를 쓸 때 저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의미를 생각하며 문장을 만들고, 일반화하고 흥미롭게 만들고자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한다. 그림을 그릴 때는 정확히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색깔들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한다. 즉, 글을 쓸 때와 그림을 그릴 때의 제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 이 공책에 그린 그림들은 글을 설명하는 것도, 글을 장식하거나 글에 대한 삽화를 넣는 것도 아니다. 일기에 쓴 글 역시 그림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내밀하고 방대한 기록인데, 어떤 기준으로 책에 추렸나.



“가장 내밀한 부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치적 두려움이나 대통령이 저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같은 것들 말이다. 정치적 분노 같은 것들도 적지만, 이러한 내용은 모든 사람들이 쓰는, 즉 독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의 것이 된다.”



-일기의 특징은?



“일기는 숲이 아니라 매일 보는 나무 하나하나를 쓰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출판할 때 주저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지금도 때로 후회한다. 일기는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작가로서 저는 하루에 8~10시간 글을 쓴다. 그때 제 옆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을 쓰고 이 일기 같은 다른 것도 쓴다.”



‘그림일기’는 출간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선 전시도 된 바 있다. 7살 때 어머니가 선물해준 일기장을 써 온 이래 작가에게 이제 작은 수첩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글을 쓰는 책상, 그림을 그리는 책상”이다.



작가는 노벨문학상이 작가의 정점인지 묻는 말에 도리질했다. 그가 상 받은 나이가 작가 한강과 같은 54살 때였다.



“그해 소설 ‘순수 박물관’을 절반 정도 쓰고 있었다. 상을 받은 후에도 간극을 두지 않고 계속 썼다. 이 소설은 제 작품 가운데 튀르키예에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 됐다. T.S. 엘리엇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말한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다. 가장 좋은 제 소설 3편을 꼽자면 ‘검은 책’, ‘내 이름은 빨강’, 그리고 ‘내 마음의 낯섦’이다. 이스탄불 삶의 풍부함을 볼 수 있는 책들이다. ‘순수 박물관’은 네 번째쯤 되겠다. 노벨상이 제게 뭔가를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의 책임감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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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너무 바빠서 여기에 글을 쓸 수 없어…… 이 그림을 그렸다”며 남긴, 소설 ‘페스트의 밤’을 완성할 때의 작업실.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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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은 여전히 ‘집요한 글쓰기’를 장기 삼는다. 신간엔 밤에 3시간 자고, 1시간 글을 쓰고, 다시 3시간을 자며 하루 12시간 갇혀 ‘페스트의 밤’을 완성한 공간을 그려뒀다.



“제가 질투하는 유형의 작가들이 있는데 하루 서너 시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저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다, 아니 될 수가 없다. 저는 제가 쓴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저 자신과 싸움을 한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면 집요함, 상상력, 자아비판, 장황하게 쓰지 않고 줄이기, 그리고 제 아내, 친구들에게 그때까지 쓴 것들을 보여 주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 다시 쓰는 것…. 이러한 것들이 작가로서의 제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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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준비하는 소설의 제목은 ‘첫사랑’. 6개월 쓰고 멈췄다 다시 다듬길 반복 중이다. 더불어 ‘일기 쓰는 노인’은 독자들에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믿기 바랍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것을 믿으세요, 공책과 홀로 남으세요.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말고 부끄럽더라도 계속 쓰십시오. (…) 자신만의 언어를 발전시키고, 또 다른 나와 말을 할 때는 그렇게 발전시킨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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