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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애들 싸움이었다… 두 부부가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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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연극 '대학살의 신'
부부 다툼에 녹인 위선과 허상
5년만에 5번째 시즌 무대 올려


파이낸셜뉴스

연극 '대학살의 신' 공연 모습.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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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 '대학살의 신'이 완전히 새로운 캐스팅으로 5년 만에 돌아왔다. 5번째 시즌인 이번 공연을 위해 김상경·이희준(미셸 역), 신동미·정연(베로니끄 역), 민영기·조영규(알랭 역), 임강희(아네뜨 역) 등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 전방위에서 활약하는 실력파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2010년 국내 초연된 연극 '대학살의 신'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위선과 가식으로 뒤덮인 인간의 민낯을 까발린 작품이다. 11세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벌인 몸싸움으로 한 소년의 앞니 두 개가 부러지고, 때린 소년의 부모 알랭과 아네뜨가 맞은 소년의 부모인 베로니끄와 미셸의 집을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2017년과 2019년에 이어 세번째로 연출을 맡게 된 김태훈은 "극중 4명의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과 이익 때문에 다른 이들을 짓밟고 무시하고 깔보며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다"며 "피가 난무하지 않아도 어떤 욕심이나 탐욕으로 다른 이들을 해하려는 행위를 통해 '학살'이라는 주제 의식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일단 배우가 바뀌었다"며 "배우들이 가진 역량 안에서 작품을 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새로운 색깔의 '대학살이 신'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자녀들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모인 두 부부는 중산층 가정의 부부답게 처음엔 고상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유치찬란한 설전을 벌이게 된다.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말을 더할수록 오해는 첩첩산중으로 쌓여가며 남편과 아내, 남자와 여자 간 대립으로 갈등이 확산된다.

막판에는 서로 삿대질을 하며 막말을 내뱉고 물건을 내던지는 등 격렬한 육탄전까지 치닫는다.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을 두고 어른들이 대처하는 모습을 시니컬하면서도 코믹하게 풀어낸다.

인물들을 둘러싼 무대 콘셉트는 모던하고 심플하다. 중산층 가정의 거실에 깔끔한 디자인의 소파와 고가의 예술서적들, 우아한 화병 등이 놓여 있다. 벽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유명한 작품 한 점이 걸려 있다.

김태훈 연출은 "지난 두 시즌에서는 무대 콘셉트를 아이들의 놀이터 콘셉트로 구성했다"며 "이번엔 투견장 또는 격투장 느낌의 라이트 박스를 이용해 좀 더 현실적이고 직선적인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90분가량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전환도, 배우들의 등장이나 퇴장도 거의 없이 대사 중심으로 공연을 채웠다. 촘촘하게 설계된 텍스트와 통쾌하게 밀어붙이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공연 그 자체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분량의 대사들이 핑퐁게임처럼 쉴 틈 없이 이어지기에 관객들 역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순간 순간 동반되는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들이 해학적 재미를 더한다.

두 부부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한 편의 시트콤처럼 바라보던 관객들 역시 자기의 이면과 마주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민낯, 교양이라는 가면 속에 가려진 인간 근본의 가식, 위선, 유치, 치사, 허상 등을 말이다.

김태훈 연출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과 장소, 정도에 상관없이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서로 충돌하고 있다"며 "불안정하고 부족한 인간들이 만나 부딪히고 소리도 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오는 2025년 1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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