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7 (화)

[세상 읽기]강태완과 윤석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강태완의 추모제에 가려 했다. 11월8일 특장차와 중장비 사이에 끼어 숨진 32세 노동자. 그는 몽골 태생이지만 한국에서 자라 몽골어를 못하는, 한국말을 너무 잘했으나 한국인은 아닌 사람이었다. ‘미등록’인 그의 꿈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꿈을 위해 그는 제도가 부과한 도전을 수행했다. 말이 안 통하는 몽골로 자진출국했고, 입시를 준비해 한국의 대학에 입학했고, 인구소멸 지역에 살면 거주 비자가 나온다길래 김제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올해 6월 거주는 허락받았으나, 생명까지는 허락되지 않았다.

강태완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나는 한 채팅방에서 사흘 지나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후 소식이 없었다. 사과 한마디 없는 회사와 싸우느라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데 으레 돌 법한 서명 안내도 없었다. 외롭게 싸우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쓰이던 중 12월5일 추모제가 열린다는 공지를 봤다. 당장 기차표를 끊었다. 하지만 12월3일 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자, 쏟아지는 일들에 파묻혀 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질수록 윤석열을 퇴진시킬 힘도 끈질기고 강해질 텐데, 투쟁이 커질수록 어떤 투쟁은 잊히게 될까 두려웠다.

윤석열의 반헌법적 쿠데타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거나 상종을 말자며 무시당했을 말들을, 국무총리와 장관들은 듣고 앉았고, 군과 경찰의 간부들은 진지하게 모의했다. 대통령 직무 정지를 위해 탄핵소추안이 긴급하게 발의되었으나 첫 표결에서 국회는 탄핵에 실패했다. 여당 대표와 제1야당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인 듯 말하기 시작했고, 인권의 이름으로 계엄 사태를 꾸짖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말이 없었다. 헌정 질서의 구조물들이 썩다 못해 삭아버린 현실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광장으로 물밀듯 쏟아져나온 사람들의 힘으로 14일 윤석열은 탄핵당했다.

강태완의 이름을 몰랐으면 좋았을 테다. 그가 아는 사람들 곁에서,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그의 이름을 몰라도 됐다. 이름도 얼굴도 다 알 수 없는, 광장에 함께 있던 누군가로 스쳐도 좋았을 테다. 그러나 그는 광장에 나올 수 없었다. 헌법은 우리의 권리장전이다. 정당이나 국가기구의 권한과 관계는 모두 권리 실현을 위한 구조물일 뿐이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출발선이 잊힌 나라에서 구조물들은 본연의 책무를 망각하고 서로 충돌하며 헌정질서를 파괴한다. 그 잔해를 쓰레받기에 담는 일은 이제 헌법재판소와 수사기관들이 맡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권리를 세우는 일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강태완의 추모제에 다녀왔다. 회사가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약속했고 15일 강태완을 떠나보내는 추모제가 열렸다. 예상과 달리 그의 투쟁은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 후원금이 이어졌고 애도의 현수막이 김제를 넘쳐 전주로 익산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퇴진 광장에 그는 없었으나 수많은 강태완들이 모였음을 깨달았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같은 구획을 넘어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는 꿈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전진시키는 민주주의. 죽음이 들이닥치기 전, 강태완은 영상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캠페인 <Let Us Dream>. 이것이 ‘이주아동’만을 위한 것으로 읽히지 않길 바란다. 누구든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저마다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꿈꾸게 하소서. 이곳은 우리의 권리가 쉽사리 무너지지 못하도록 지키는,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윤석열은 우리의 미래를 차압하여 과거를 키웠다. 강태완은 우리의 현재를 도우며 함께 미래를 열 것이다. 윤석열도, 윤석열이 대통령 된 나라도 과거로 보내며 우리는 미래로 가자. 이제 시작이다.

경향신문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해제, 탄핵 순간 사라진 국회의원은 누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