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7 (화)

군을 망치려 한 군 통수권자… “尹이야말로 반국가세력”[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손효주 정치부 기자 


“대한민국에서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이 누구입니까? (중략)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려는 반국가세력 아닙니까?”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합리화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이같이 반문하자 일부 장교들은 실소했다. 영관급 장교 A는 “누구에게 던지는 질문인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그 질문의 답은 대통령 아니냐”고 했다. B 장성은 “명분 없는 계엄 선포로 대통령은 군이 신군부 독재가 끝난 이후 ‘국민의 군대’가 되기 위해 40년 가까이 차곡차곡 쌓아온 노력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며 “군과 국민에게 끼친 악영향을 생각하면 대통령이야말로 국헌 문란 세력이자 반국가세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간 군 간부들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삼가 왔다. 국군조직법상 최고 지휘관인 대통령에 대해 함부로 말했다가 군형법상 상관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굳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아도 군 통수권자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군인의 기본 소양이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불문율이 깨진 듯하다. 군 통수권자는 군의 안정을 유지하고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존재라는 기본 전제가 깨지면서 군 통수권자를 존중할 명분이 사라졌다. 육군 특수전사령관,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국군방첩사령관, 국군정보사령관 등 대북 작전을 수행할 핵심 부대 지휘관이 줄줄이 구속·체포되고, 주요 부대 영관급 장교들까지도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계엄 블랙홀’ 국면으로 군은 전례 없는 대혼란에 빠졌다.

군 내부에선 군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군 통수권자가 정반대로 위법한 명령을 강요해 군 전체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국민의 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실을 확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수행할 수 없어 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끌거나 국민에게 총을 겨누지 않으려고 국회를 일부러 배회하는 등 부당한 지시에 항명한 군인들 사례가 공개되고 있지만 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예전 같지가 않다.

최전방 부대의 한 장교는 “3일 계엄 선포 직후 북한 도발에 대비해 전군 경계 태세 강화 지시가 내려와 협조를 구하는 차원에서 일부 공공기관을 방문했다”며 “그런데 이를 두고 최전방 지역에도 계엄군이 투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이어 “계엄 이후 정상적인 임무 수행을 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고 위축된다. 실제 북한 도발이 발생했을 때 계엄 트라우마 탓에 군인들이 즉각적인 대응 작전 수행을 주저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도 했다.

‘창끝부대 전투력’의 근간인 초급간부 충원이 또다시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크다. 지난달 국방부는 올해 학군사관후보생(ROTC) 모집에 지난해 5907명 대비 2082명 증가한 7989명이 지원한 사실을 발표하며 고무됐다. 9년 만의 지원율 상승이어서다.

그러나 군이 이번 사태로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현장 초급간부들마저 전역을 고민하는 등 동요하는 분위기다. 전방의 한 위관급 장교는 “세무사나 회계사 등 전문직 시험을 알아보는 동기들이 꽤 있다”며 “명예 하나만 보고 군인의 길을 택했지만 동경했던 고위 지휘관들이 부당한 명령을 일부라도 이행해 놓고 경쟁하듯 울며 자기변명 하는 모습을 보고 군에 남은 희망이 없어졌다. 후배들에게 장교의 길을 걸으라고 권하지도 못하겠다”고 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18일 ‘윤석열 정부의 국방 분야 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는 ‘보람되고 자랑스러우며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군’을 지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 같은 정책 추진 이유로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그 어떤 첨단 전력을 갖추고 있어도 싸워 이길 수 없기 때문”을 들었다.

계엄 사태 여파로 군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국민의 눈치를 보고 훈련을 위한 병력 이동마저 오해를 살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국방부 설명대로라면 계엄 사태 여파에 시름하는 현재의 군은 ‘싸워 이길 수 없는 군대’다. 계엄 블랙홀에 빠진 군대가 위상과 신뢰도를 회복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거듭나는 데 이번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1시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가결된 직후 합동참모본부를 찾아 군 주요 직위자들과 악수하며 “고생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군을 창군 이래 최대 위기로 몰아넣은 군 통수권자는 악수와 몇 마디 말로 군의 사기가 회복될 거라 생각한 것일까. 윤 대통령이 그토록 ‘척결’하고 싶어 계엄까지 선포하게 만든 반국가세력이 결과적으로 군을 마비시킨 대통령 자신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