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 헌재가 퇴진 여부 결정
위헌적 계엄, 이성적 판단일 리 없어
국격 추락하고 국민 자부심 큰 상처
대통령 등 지도자는 정신 건강해야
국민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게 있다. 대체 윤 대통령의 심리상태가 어땠길래 비상계엄이 ‘절박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계엄이 성공할 것이라고 오판을 한 걸까. 한국은 주요 7개국(G7)을 바라보는 선진국, 그것도 국민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가 유독 강한 나라인데 말이다.
김환기 논설실장 |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계엄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멈추도록 하기 위한 경고용”이라고 강변했지만 견강부회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당연히 질타받아야 한다.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특검 법안과 장관 등의 탄핵소추안을 남발한 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하지만 그것은 헌법 65조에 따른 정치 행위다. 그렇기에 그걸 해결하는 방법도 헌법의 범주 내에 있어야 한다. 권한을 남용했다면 헌재의 결정으로 바로잡고 국민이 표로 심판하면 될 일이다.
윤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은 이성적 판단일 리 없다. 정치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국회에 군대를 투입한 것은 확증편향식 정국 인식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윤 대통령은 강성 친윤(친윤석열) 인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측근 그룹과만 소통하고 보수 유튜브 방송에 과몰입했다고 전해진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으니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래서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상식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일찍이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며 지도자들의 편협한 시야를 비판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시스템의 점검을 위해 군대를 보낸 것은 더 이해가 안 된다. 스스로 일부 세력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경도됐다고 고백한 꼴이다. “부정선거는 시스템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앙선관위 입장이다. 과대망상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이번 사건은 여실히 보여준다.
‘격노 시리즈’가 화제가 될 정도로 윤 대통령은 화를 잘 낸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계엄 국무회의 때 윤 대통령 얼굴이 이미 (흥분해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 정도로 격한 상태면 (비상계엄을) 아무도 못 막는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분노와 흥분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한 말과 행동은 자기 발등을 찍기 십상인데 윤 대통령이 그런 사례 아닌가.
망상과 확증편향, 분노가 윤 대통령을 무너뜨렸다고 봐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국정철학으로 삼은 윤 대통령이 반자유 행태인 비상계엄을 꺼내 든 것은 이율배반이다. K팝, K무비, K문학 등 한류로 상승하던 국격이 추락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이 ‘K팝과 독재자들: 민주주의에 가해진 충격이 한국의 양면을 드러냈다’는 분석기사를 게재했을 정도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뤘다는 국민의 자부심에도 큰 상처가 났다. 우리 국민은 영화 ‘서울의 봄’이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는 불안한 사회에 살고 있음을 생생히 목도했다.
윤 대통령은 보수 진영에 타격을 입혀 차기 대통령 선거 전망을 어둡게 했다. 배신자 프레임은 국민의힘을 두 쪽 낼 수도 있는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 윤 대통령의 ‘자폭’ 계엄은 진중권 광운대 교수 표현대로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유죄 선고로 다 죽어가던 이재명 대표를 살려 놓았다.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경우 후임을 뽑는 대선이 치러진다. 만일 이 대표가 재판 지연으로 사법 리스크를 덮고 정권을 잡는다면 국제사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할지 의문이다. 현명한 우리 국민의 선택에 국가의 미래가 달렸다.
이전 칼럼에서 정치인의 기본 자질로 대의에 헌신하려는 열정, 책임의식, 균형 감각, 권력 의지, 민심을 읽고 교감하는 능력을 제시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망상, 확증편향, 분노에 지배되지 않는 건강한 정신이 그것이다.
김환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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