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7 (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그림일기 펴낸 노벨문학상 수상자 “내 마음속엔 화가가 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림일기 ‘먼 산의 기억’ 출간한

노벨문학상 오르한 파무크 인터뷰

조선일보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72)가 뉴욕 집필실 책상 앞에 앉아 웃고 있다. 그는 “요즘에는 ‘첫사랑’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 있다. 한국 독자들과도 만날 이 책을 끝맺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민음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행복은 소설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다. 항상 등장인물들과 함께 사는 것. 나는 내 소설에 매우 만족한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72)가 2022년 출간한 그림일기 ‘먼 산의 기억(Uzak Dağlar ve Hatıralar)’에 끄적인 글 일부다. 파무크의 대표작은 ‘새로운 인생’(1994), ‘내 이름은 빨강’(1998), ‘눈’(2002) 등. 2006년부터 미 컬럼비아대에서 비교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도 ‘순수 박물관’(2008), ‘내 마음의 낯섦’(2014), ‘빨강 머리 여인’(2016), ‘페스트의 밤(2021) 등을 써내며 거장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번 그림일기를 출간한 파무크를 서면으로 만났다. 2009~2022년까지 지난 14년의 단상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몰스킨 일기장에 빼곡하게 채웠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겪은 일, 가족에 관한 일화, 글 쓰는 과정, 고국 튀르키예와의 복잡한 관계, 무엇이 영감을 줬는지 등이 담겼다. 스물두 살 때까지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장마다 그림도 그려 넣었다. 신간과 인터뷰 답변 모두 파무크의 전담 번역자인 이난아 한국외대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왜 작은 몰스킨 노트인가?

“몰스킨 공책이 내 호주머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항상 가지고 다닐 수 있다. 기차를 타고 갈 때 메모하고, 때로는 어딘가에서 식사할 때도 메모한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아내와 외출하려고 할 때 그녀를 기다리면서 메모한다.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시간을 내냐고 묻는데, 이렇게 쉽게 시간을 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틈새 시간이 있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조선일보

2020년 어느 날의 일기. 열두 시간씩 글을 쓰며 소설 ‘페스트의 밤’을 완성한 곳을 그렸다. /작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오르한 파무크의 '먼 산의 기억'에 실린 그림과 일기. /작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학과 이미지의 관계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는 시 쓰고, 그림 그리고, 조각도 했다. 그림과 문학의 간극이 벌어진 것은 현대의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한 선생님이 있었는데, 내가 그림 위에 글씨를 쓰곤 하자 그림 위에 글을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스물두 살까지 건축가 집안에서 화가가 되려고 하는 마음으로 자랐다. 내 마음속에는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화가가 살고 있다.”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이나 원칙은?

“어떤 작가들은 천천히 거북이처럼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떤 작가들은 2~3시간 앉아서 4페이지를 쓰고 하루의 남은 시간에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 아니다. 계속 글만 쓴다. 내가 쓴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 자신과 싸운다. 작가로서 내 비밀은 집요함과 단호함, 다시 쓰고, 수정하고, 다시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깊게 생각하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은 한 작가의 정점(peak)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는 이 말을 적용할 수 없을 것 같다. 노벨문학상을 54세에 받았다(한강과 같음).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수상한 셈이다. 소설 ‘순수 박물관’을 절반 정도 썼을 때였다. 하지만 상을 받고 간극을 두지 않고 계속 썼다. ‘순수 박물관’은 지금 내 작품 가운데 튀르키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이다. T. S. 엘리엇이 노벨문학상을 받고 나서 좋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 노벨문학상이 나에게 무언가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의 책임감….”

-일기에 “나는 쉬지 않고 일한다. 이상하다. 마치 뭔가 증명해야 할 게 있는 것 같다”고 썼는데.

“내가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지 정말 나도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에게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면 글을 못 쓸 것 같다. 하하하.”

조선일보

2006년 뉴욕 집필실에 앉아 포즈를 취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72). /민음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튀르키예의 권위적인 정치 체제에 대해 그간 많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내가 용감하다고 말하는데, 과장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두려울 때가 있다. 튀르키예 대통령은 많은 작가를 감옥에 넣었는데, 아마도 위에서 말한 노벨문학상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것 같다.”

-한국 작가 최초로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신이 튀르키예 작가 최초로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한국인들이 느끼고 있다.

“한강 작가에게 축하 인사를 보낸다.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튀르키예어로 번역된 그녀의 작품들이 나왔는데 사놓았다. 곧 읽을 것이다.”

파무크는 “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의 75%가 대통령에게 화를 내고 있다.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바란다”며 한국 상황에 대해서도 첨언했다. “정치적 분노 같은 것들도 노트에 적지만, 이러한 내용은 모든 사람이 쓰는, 즉 독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의 것이 된다.”

-이 시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자신을 믿기 바란다. 자신이 쓰는 것을 믿고, 공책과 홀로 남아라. 글을 쓰는 동안 서서히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에 수동적이고 무의미하게 대처하는 대신, 능동적이고 활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오르한 파무크(72)

1952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 스물셋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인생’(1994), ‘내 이름은 빨강’(1998), ‘순수 박물관’(2008) 등이 대표작이다.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평화상, 프랑스 메디치 상에 이어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황지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