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前 정권 일가 은닉 재산
국제사회 해외 곳곳 행방 추적
지난 8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피신으로 비어 있는 시리아 다마스쿠스 대통령궁에 들어간 시민들이 내부의 가구와 집기들을 들고 나가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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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父子) 세습을 통해 시리아를 53년간 독재해 온 알아사드 가문이 부정하게 쌓아온 재산의 행방을 추적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서방의 제재와 13년에 걸친 내전으로 시리아 국민 90%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동안 도리어 이를 축재의 기회로 삼은 알아사드 가문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알아사드 일가의 해외 은닉 재산이 최대 17조원에 달하며, 이를 찾아내려는 국제사회의 추적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반군이 지난 8일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알아사드 일가가 러시아로 망명한 후의 일이다.
그래픽=박상훈 |
◇마약 밀매 등으로 부동산·제트기·수퍼카 축적
미 국무부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알아사드 일가는 국영기업 독점, 마약 밀매 등으로 재산을 축적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2230만달러(약 320억원) 상당의 초고층 빌딩, 프랑스에 9000만유로(약 1360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오스트리아 빈에 호텔, 루마니아에 부동산 등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아르헨티나 차(茶) 농장, 야자수 모양의 두바이 인공 섬 ‘팜 아일랜드’ 저택 등도 보유하고 있다.
재산 은닉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5촌 조카 모하마드 마클로프는 두바이에서 전용 비행기를 고급 주택처럼 호화스럽게 개조하는 데 약 4300만달러(약 620억원)를 투자했다고 스스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 전용기에는 두 개의 넓은 거실, 침실, 샤워실, 식당, 회의실이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의 5촌 조카 모하마드 마클로프가 2019년 한 언론에 광고한 럭셔리 개인 전용 기 사진. 비행기를 주택처럼 개조하는 데 약 4300만 달러(약 620억원)을 투자했다고 공개했다./매체 '더 스테이츠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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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조세 회피처인 케이맨 제도에서 18개에 달하는 HSBC은행 계좌, 스위스에서 크레디스위스 계좌 등이 발견됐다. 이 중 프랑스의 9000만유로 상당 부동산은 2019년 프랑스 법원에 의해 자산 동결된 상태다. 이들이 해외에 은닉한 자산은 최대 120억달러(약 17조2000억원), 최소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로 추정된다고 미 국무부는 밝혔다.
앞서 시리아 대통령궁에선 페라리·람보르기니·롤스로이스 등의 최고급 차량뿐 아니라, 에르메스·루이비통·카르티에 등 고가의 명품들도 쏟아져 나왔다. 이 중 페라리 F50은 최근 경매에서 550만달러(약 79억원)에 판매됐다. 워싱턴포스트는 “알아사드는 일반 승용차를 몰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는 등 겸손한 이미지를 구축해 왔지만, 숨겨진 사치 생활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바샤르 부인이 재산 관리 총괄
1대 하페즈 알아사드, 2대 바샤르 알아사드의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하페즈의 형제, 처남, 조카를 포함하는 방계 친·인척까지 재산 은닉에 참여했다. 특히 일가의 부정 축재는 정부군이 2016년 러시아를 등에 업고 반군으로부터 수도 다마스쿠스를 탈환한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바샤르의 친동생 마헤르 알아사드가 정권 유지 자금을 대려고 마약과 무기 밀매, 석유 밀수 사업에 손대기 시작한 것도 이때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바샤르의 부인인 영국 태생 아스마 알아사드가 일가 재산 총괄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스마 알아사드는 세계적 투자은행 JP모건 출신으로, 대통령 직속 비공식 경제 위원회를 꾸려 기업 등의 자산을 압류했고 본인이 수장으로 있던 비정부기구(NGO)로 돈을 세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스마는 내전 때문에 파리에 도피해 있던 2010년대 초, 명품 쇼핑 등 호화 생활이 발각돼 ‘시리아의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불렸다. 현재 남편과 함께 러시아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 단체 G37 체임버스에서 알아사드 재산을 추적해 온 토비 캐드먼은 “이들은 폭력 범죄뿐만 아니라 금융 범죄에도 전문가들이었다”고 했다.
시리아를 24년간 철권통치하다 축출돼 러시아로 도망친 바샤르 알아사드의 저택에 람보르기니·페라리·애스턴마틴 등 비싼 스포츠카들이 주차돼 있다. 지난 9일 반군과 외신이 저택에 도착했을 때 촬영한 화면이다. 아사드 일가가 시리아와 해외에 숨겨놓은 재산 추적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튜브 |
알아사드 정권은 중앙은행을 통해 2억5000만달러(약 3590억원)에 달하는 현금 뭉치를 모스크바 공항으로 실어 나르기도 했다. 2018∼2019년 모스크바의 브누코보 공항으로 거의 2t에 달하는 100달러짜리 지폐, 500유로짜리 지폐를 운반했으며, 이를 러시아 은행에 입금한 기록을 확보했다고 FT는 전했다. FT는 “이 기간은 시리아가 러시아의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빚을 지고 있던 시기”라며 “알아사드 일가가 러시아에서 비밀리에 고급 주택 등을 매입하던 시기와도 겹친다”고 했다.
다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 몰락한 중동 독재자들의 재산 회수 시도가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한 점을 볼 때, 알아사드의 재산에 대한 추적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알아사드 일가의 재산을 제재해 온 백악관 전직 당국자 앤드루 타블러는 “그들은 돈을 세탁할 시간이 많았다. 그들은 항상 플랜B가 있었고, 망명을 위해 잘 준비돼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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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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