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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국회증언법, 이정도면 ‘갑질’증언법…CEO 맘대로 부르고, 기밀 유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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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회의장 초청 경제단체 비상간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우원식 국회의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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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며, 입법 환경을 둘러싼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간 정부에서 추진한 기업지원 법안 논의는 지지부진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각종 ‘기업 옥죄기’ 법안만 속도를 내서다.

17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 4단체 수장은 우원식 국회의장과 ‘경제계 비상 간담회’를 갖고 여·야 모두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진 무쟁점 경제 법안 12개(반도체특별법·인공지능특별법·전력망확충특별법 등)의 처리를 촉구했다. 최 회장은 “무쟁점 법안의 연내 통과와 함께, 경제계가 우려하는 법안의 충분한 논의 시간 마련 등에 국회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이들이 나선 것은 기업규제 법안이 추진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탄핵 정국 전에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쓰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현재는 한덕수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쓸 수 있는지를 두고 법적·정치적 논란이 인다.

대표적인 기업 옥죄기 법안은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경제 관련 6개 법안(국회증언감정법·양곡관리법 등 개정안)이다. 이 가운데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건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다. ▶기업인 ‘동행명령’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개인정보·영업기밀 이유료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을 금지하며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이 해외출장·입원할 경우에는 온라인 출석을 강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이 언제든 기업인을 국회로 호출하고, 기업 기밀이 담긴 서류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시행되는 셈이다. “국회의원 갑질을 위해 우리 산업이고 기업이고 모두 납작 엎드려 죽으라는 내용”(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같은 비판이 거세지는 배경이다.

이미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부작용을 고려해 법안에 우려하는 의견을 국회에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365일 뛰는 기업인이나 소상공인 등이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1년 내내 국회 일정에 발목 잡힐 우려”가 있으며 “기업의 미래전략·기술개발 자료 등이 해외 경쟁사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서 기업에 매우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산업부는 또 “한국과 시차가 큰 해외에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해외 파트너와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국회 출석을 강제하는 것”이라며 “특히 금융거래 내역 등 금융 관련 정보가 유출되면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산업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6단체도 공동 성명을 내고 기업의 핵심 기술 유출 우려 등이 있다며 재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들도 영업비밀 유출을 우려해 한국에서의 사업 지속 여부를 고민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며 “특히 해외 출장 중인 기업인에게도 화상 출석을 강제하는 것은 촌각을 다투는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 해외 기업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중앙일보에 “영업기밀이나 개인정보 제출 의무는 선진국들의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전세계 어디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 대한 추가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가운데 이사의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재계가 걱정하는 기업 옥죄기 법안이다. 이 법안이 실현되면 소송이 증가하고 투기자본의 경영 간섭이 느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게 재계의 볼멘소리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전체가 아니라 주식 투자자 일부만을 고려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오는 19일 이재명 대표 주재로 상법 개정안 관련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경제계 비상 간담회’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보조금 지원이나 근로 시간 규제 완화 입법은 기업들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상법 개정, 법정 정년 연장 같은 사안들은 국회에서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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