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과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참가자들이 윤석열 탄핵으로 ‘봉꾸’(응원봉 꾸미기)한 작품들을 모아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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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내란 사태’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 의결을 끌어낸 주역은, 다름 아닌 거리를 가득 채운 응원봉이었다. 케이(K)팝 아이돌 ‘덕질’의 상징이자, 이른바 ‘빠순이’ ‘빠돌이’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응원봉이 촛불보다 더 밝고 길게 타오르며 시민들을 뭉치게 한 것이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같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집회와 아이돌 응원이 비슷하다”며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응원봉이 이번 탄핵 집회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순식간에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 장면으로 떠오른 응원봉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18일 가요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응원봉의 시작은 1990년대 중후반 에이치오티(H.O.T), 지오디(god),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 탄생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응원봉이 아닌 풍선의 색깔로 팬덤을 구분했다. 에이치오티 흰색, 지오디 하늘색, 젝스키스 노란색 등이었다. 임희윤 평론가는 “‘드림콘서트’ 등 대형 팬덤을 가진 아이돌 가수들이 여럿 나오는 공연에서는 공연장을 채운 형형색색의 풍선으로 팬을 구분했는데 아이돌 역사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했다.
콘서트장에서는 풍선과 함께 야광봉을 사용하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공연장 앞 노점상에서 몇천원을 받고 팔았던 일회용 제품이었다. 이 야광봉을 응원 도구로 본격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 에이치오티의 문희준이 솔로로 데뷔하면서부터다. 방송 공개녹화 등에서 팬들이 야광봉을 흔드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풍선을 점차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룹 엔시티(NCT)의 응원봉 ‘믐뭔봄’.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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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광봉은 모양이 똑같았기 때문에 팬덤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것을 차별화한 첫 가수가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의 세븐이다. 세븐은 야광봉을 꺾어 숫자 ‘7’ 모양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며 응원봉의 초기 형태를 제시했다. 그 뒤 같은 소속사 빅뱅이 한국 아이돌 최초로 월드스타 반열에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조명 기능이 탑재된 응원봉 ‘브이아이피’(VIP)봉을 만들게 된다. 꽃 모양의 브이아이피봉은 빅뱅 멤버 지디가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가요계에선 이 브이아이피봉을 케이팝 응원봉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빅뱅 성공 이후 2010년대 들어 응원봉은 케이팝의 기본값이 됐다. 그룹이 데뷔하면 자동적으로 응원봉도 함께 만들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엘이디(LED) 기술 발전으로 인해 밝기, 색깔 등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조종할 수 있다. 여기에 특정 주파수를 이용해 중앙에서 제어가 가능한 기능이 제공되면서 공연장에서 응원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응원봉 하나하나가 무대 장치와 조명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케이팝의 필수가 된 응원봉은 어떻게 제작될까. 엄연히 전기제품이기 때문에 전문 업체들이 존재한다. 현재 팬라이트, 비트로, 사운드 웨이브 3개 제조사가 3대 기획사(하이브,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의 응원봉 제작을 담당하며 업계를 삼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팬라이트는 2018년 매출 140억원에서 지난해 275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뛰었다. 그만큼 응원봉 업계가 활황이란 의미다.
그룹 뉴진스의 응원봉 ‘빙키봉’.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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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은 아티스트마다 다르다. 신인인 경우에는 보통 소속사 브랜드 관리 부서에서 기획하지만, 중견급 이상의 가수들은 적극적으로 콘셉트나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낸다. 아이유는 응원봉은 물론 굿즈 하나하나까지 직접 디자인을 검토한다고 한다.
응원봉의 개성 있는 이름도 화제다. 기획사에서 자체적으로 짓기도 하고 팬들이 애칭으로 부르다가 정착되기도 한다. 이번 탄핵 촉구 집회에서 눈에 많이 띄었던 엔시티(NCT)의 ‘믐뭔봄’은 팬들이 네모난 응원봉 모양을 보고 만든 이름이다. 반면 뉴진스의 ‘빙키봉’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디자인은 물론 이름까지 직접 지었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그룹의 로고나 아티스트 각자의 특징을 응원봉 디자인에 반영하는데, 이름의 경우 팬들과 소통하다가 지을 때도 있고 붙이는 방식은 가수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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