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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광화문에서/김현수]계엄 사태의 또 다른 교훈… 리더는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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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요즘 누구를 만나든 대화의 종착역은 12·3 비상계엄이다. 계엄이 초래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타격 우려는 물론이고, 이 충격적 소식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들었는지 개인적 경험을 나누게 된다. 더 나아가 ‘왜 똑똑하다는 이들이 이같이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심리적 분석에까지 이른다.

기업인들은 주로 ‘불통(不通)’과 ‘집단사고(groupthink)’의 폐해를 꼽았다. 집단사고는 집단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로 객관성을 잃고, 집단 화합과 동조에 대한 열망으로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차단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말한다. 어빙 재니스 미 예일대 교수가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똑똑한 참모들이 내린 재앙적 결정, 1961년 ‘피그만 침공’ 사건에 영감을 받아 1972년에 정립한 개념이다. 사석에서조차 듣기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적 스타일과 ‘인의 장막’ 속 집단사고가 만나 파국이 빚어졌다는 분석이다.

결국 누구나 자유롭게 비판적 의견을 내놓고, 이를 잘 듣는 리더가 중요하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천은 매우 어렵다. 제왕적 리더십과 충실한 실행자로 이뤄진 한국적 조직문화는 더더욱 집단사고에 빠지기 쉽다. 최악의 의사결정 표본이 된 계엄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주요 기업에서도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경청(傾聽)’이라고 쓴 액자를 늘 사무실에 걸어놓는다고 했다. 남의 말을 듣기 싫더라도 액자를 보며 되새기기 위해서다. 그는 “결국 내 판단으로 밀어붙일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일단 들어 놓으면 마음 한편에 그 반대 의견을 항상 염두에 두게 된다. 다음 의사 결정에 반영하거나 조심해야 할 리스크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싫은 소리 하는 이를 옆에 두고, 싫어도 들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성공하는 리더십은 경청을 개인의 의지에 맡기지 않는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피그만 침공 실패 이후 ‘특정 안건에 대한 찬반보다 여러 대안을 내놓는 회의를 한다’, ‘대통령이 없는 자리에서 소그룹별로 토론한다’ 등 집단사고를 피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쿠바 미사일 위기에는 현명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 엔비디아 젠슨 황 CEO도 소통의 달인으로 꼽힌다. 올해 3월 엔비디아 본사에 가보니 엘리베이터는 건물 구석에 숨겨져 있다시피 했다. 그 대신 중앙에 각 층 카페와 이어진 계단으로 직원들이 이동하게끔 설계돼 있었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반도체 개발 특성상 전문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억지로라도 계단에서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젠슨 황 CEO가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타나서 ‘뭘 연구하느냐’고 묻고, 한참 듣고 가서 곤혹스럽다”는 개발자도 있었다. 알 수 없는 미래 기술에 투자하는 테크기업 특성상 경청 없인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최악의 의사결정으로 어마어마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누구든 경청의 파워를 뼈저리게 느낀 아주 비싼 수업료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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