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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데스크가 만난 사람]“美서 미슐랭 별셋 비결? 별로인 것, 적당한 것 없애고 최고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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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최고 식당 등급 받은 임정식 셰프

미국 내 한식당 최초 별 3개… 군대에서 셰프의 꿈 처음 찾아

분자요리 영감받은 ‘뉴 코리안’… 매 끼니가 아이디어 구상 시간

원래 매력적인 한식 이제야 주목… 요즘 최애 음식은 대방어와 소맥

동아일보

12일 서울 강남구의 미슐랭 2스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정식당’에서 임정식 오너 셰프를 만났다. 임 셰프는 “식사의 본질은 필요에서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며, 파인 다이닝은 대체 불가한 낭만”이라며 “15년간 살아남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마른 듯 단단한 체구를 가진 그의 취미는 철인 3종(자전거, 달리기, 수영)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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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인 것’, ‘적당히 괜찮은 것’들을 차근차근, 계속해서 없애 왔습니다. 우리 식당에는 ‘최고’만 남도록 하는 거죠. 뭘 갑자기 잘 해서 미슐랭 스리스타(최고 식당에 부여되는 등급)가 된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미국 내 한식당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받은 뉴욕 트라이베카 ‘Jungsik(정식)’의 임정식 셰프(45)를 12일 서울 강남구의 파인 다이닝 식당 ‘정식당’에서 만났다. 정식당은 뉴욕 정식의 본점 격으로,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에 처음 진출한 2016년 말 별 1개를, 이듬해 말부터는 별 2개를 받아 왔다.

뉴욕 정식이 받은 미슐랭 별 3개는 모든 요리사가 꿈꾸는 최고 영예다. 별 3개를 받은 식당은 미국에서도 14곳뿐이다. K푸드 열풍이 전 세계에 불기 한참 전이자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에 진출하기도 전인 2011년 일찌감치 뉴욕 중심지에 임 셰프가 식당을 낸 이유도 “한국에 10년 내로 미슐랭이 들어오지 않을 것 같으니, 미슐랭이 있는 미국으로 내가 가겠다”였다. 미국 진출 13년 만에 별 3개를 품에 안으며 임 셰프는 꿈을 이뤘다.》


경기 수원시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먹는 걸 좋아했던 소년은 명지대 산업공학과를 다니다 서해의 작은 섬, 말도로 군대를 가면서 요리에 눈을 떴다. 군 복무 시절 2주간 취사병 ‘대타’를 하면서 가슴 뛰었던 그는 셰프가 되기로 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세계적 요리학교로 꼽히는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로 진학했다.

2005년 CIA를 졸업하고 2007년 스페인의 미슐랭 별 2개 식당에 무작정 이력서를 넣었다. 무급 견습생으로 일하는 동안 당시 인기를 끌었던 분자 요리 장르인 ‘뉴 스패니시’에서 ‘정식당’의 영감을 얻었다. ‘뉴 코리안’이라는 장르를 생각해낸 것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익숙한 한식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임 셰프는 “일하다가 잠깐 쉬던 10분 사이에 식당 이름, 메뉴, 인테리어까지 떠올랐다”고 했다.

인터뷰는 뉴욕 정식이 미슐랭 별 3개를 따낸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이었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로 분주했지만 파인 다이닝을 향한 그간의 여정을 묻는 질문에는 무섭게 집중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날에 뭘 하고 있었나.

“별 3개를 못 받을 줄 알고 경기 용인시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있었다. 11일 오전 10시쯤 갑자기 휴대전화가 터질 듯이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졌다. 축하 메시지에 제대로 답할 겨를도 없어 오후 늦게서야 순차적으로 답장했다. 저녁이 돼서야 실감이 났다. 샴페인 한 병을 따서 집에서 혼자 조용히 자축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별로인 것’을 차근차근 없애 온 것이 별 3개의 비결이란 말이 인상깊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달라.


“가령 맛의 정도로 따졌을 때 ‘정말 훌륭함’ A, ‘훌륭함’ B, ‘적당함’ C 세가지 음식이 있다면 C는 우리 메뉴에서 빼버린다. 무언가를 개발하고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걸 쌓는 동시에 필요 없는 것을 비우는 작업도 중요하다. 음식이든, 기물이든, 가구든 적당히 괜찮은 건 다 버린다. ‘최고의 것’만을 남긴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원칙이다. 하다 못해 접시, 직원들의 복장,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물비누까지도 그 원칙을 적용한다. 미슐랭 별 2개, 3개짜리 파인 다이닝을 찾는 손님들은 기대감이 엄청날 텐데 실망시키면 안 되지 않겠나.”

미슐랭 평가원은 뉴욕 정식당에 대해 “이번 식사는 전율을 느낄 만큼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끔 시작부터 끝까지 감탄을 자아내는 세련된 식사를 경험할 때가 있는데, 정식당은 이제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했다. 음식뿐 아니라 서비스에 대해서도 “세심하면서도 조용하고 방해되지 않게 서비스하는 팀은 정식당의 품격을 높인다”, “전문성과 친근함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 정식은 처음부터 잘 됐나.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접으려고 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초반에는 장사가 너무 안 됐다. 하루에 한 팀만 받았던 적도 있다. 뉴욕 정식은 문을 연 이듬해인 2012년 미슐랭 별 1개를 받았는데 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심지어 팬데믹 때는 뉴욕이 봉쇄되면서 6개월간 문을 닫아야 했는데 이때는 ‘정말 문을 닫을 때가 됐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버텼다. 우리 식당에 1층 발코니 구역이 있어서 팬데믹 기간에 여기에서만 손님들이 식사할 수 있었다. 외식을 하고 싶어하던 손님들이 이때 정식을 많이 찾으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메뉴, 서비스 등 식당 운영의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나.

“요즘은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뭘까’를 먼저 생각한다. 여기에 아이디어와 기술을 집어넣어서 특이한 부분을 구현해 보려고 한다. 밥 한끼 한끼가 아이디어 구상의 시간이다. 밥을 그냥 먹기만 하면 배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고심하면서 먹으면 그건 ‘경험’이 된다. 매 끼니를 그렇게 고민한다. 익숙한 것에 특별함과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거다. 특히 다르면서 유니크한(독특한) 부분을 넣으려고 노력한다. 단순히 다르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다르면서 좀 더 좋은 게 있어야 한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내서 만든 메뉴 중 하나가 ‘트러플 냉면’이다.”

―서울과 뉴욕에서 파는 메뉴가 같나. 다르다면 어떤 차이가 있나.

“기본적인 구조는 같지만, 현지 식재료 품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가령 미국에서 유통되는 우대갈비는 한국에 수입되는 것보다 품질이 뛰어나다. 그래서 뉴욕 정식에서는 우대갈비 요리가 주요 메뉴다. 반면 소고기 안심의 품질은 한국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한국 정식당에서는 우대갈비 대신 한우 안심을 내놓는다. 각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고 맛있는 식재료를 써서 요리한다.”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불고 있다. 한식의 위상 변화를 느끼나.

“처음 미국에 진출했던 10여 년 전 한식은 뉴욕에서 코리아타운, 36번가에만 머물러 있는 문화였다. 지금은 한인이 밀집한 코리아타운 밖, 뉴욕 전역으로 한식 저변이 확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언론에서 한식을 빼면 이야깃거리가 없을 정도다. 이제는 ‘코리아’만 붙으면 일단 화제성을 잡고 가는 분위기다. 그만큼 한식은 ‘핫한 것’이 되고 있다. 한국 식당도 많아지고, 한국 브랜드도 많아지고 한국 셰프도 많아지고 있다. 한때는 한식 붐이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한식 붐이 분 이유가 뭘까.

“지금까지 한식의 매력이 외국인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뿐이다. 한식은 원래 매력적이었다. 이제서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잘 몰랐을 거다. 이제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식도 인기를 끌게 된 것 같다. K팝 스타들이 먹는 음식이 뭔지 전 세계의 젊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세상이 됐다. 좋아하는 스타가 먹는 음식을 함께 즐기고 싶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식에 대한 호기심이 늘었다. 같이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서양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는 경험’으로 인식한다. 한국 사람들에겐 익숙하지만 그들에겐 이색적인 즐거움인 것이다.”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이디어를 내고 빠르게 움직이는 일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가깝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식당 두 개를 운영하려면 라인에 서서 직접 요리할 시간은 없다. 직원을 뽑을 때는 인성이 훌륭하고 성실한, 그래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미슐랭 스타를 목표로 하는 후배 요리사들에게 조언한다면….

“지름길은 없다는 것. 계속해서 진정성 있게 경험을 쌓아야 한다. 더 빨리 가고 싶다면 더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다. 파인 다이닝은 장사지 예술이 아니다. 장사(비즈니스)가 돼야 지속 가능하게 투자도 하고 직원들도 먹여 살릴 수 있다. 서울과 뉴욕에 있는 직원만 100명이다.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면서 항상 했던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글쎄. 너무 많다. 요즘에는 대방어에 꽂혔다. 배달 앱에서 대방어를 시켜서 혼자 ‘소맥’(소주+맥주)과 먹는다. 소주 한 병에 맥주 세 병이면 얼큰하게 취한다. 소맥이 좋은 이유가 뭐냐고? 싸고, 편하기 때문이다. 라면도 너무 좋아한다. 아마 셰프들 중에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나일 거다.”

미슐랭 가이드 평가원은 정식당에 대해 “정식당은 항상 인상적이고 특별했지만, 이번 식사는 맛과 텍스처(질감)의 극도로 정교한 조화로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때로는 유쾌한 요소까지 더해졌다”고 평가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정식당의 메뉴와 그가 몹시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식과 파인 다이닝의 ‘정식당’을 말할 때는 진지한 표정으로 정밀한 분석과 책임감을 드러냈던 그는 인간 ‘임정식’을 묻는 질문엔 소탈하면서도 솔직한 면모를 보여줬다.

임정식 셰프
△1978년 경기 수원시 출생
△ 2005년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졸업
△ 2009년 서울에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정식당’ 오픈
△ 2011년 미국 뉴욕에 ‘정식(Jungsik)’ 오픈
△ 2012년 뉴욕 지점 ‘미슐랭 가이드 2013’ 1스타, 한국인 최초 미슐랭 스타 셰프
△ 2013년 뉴욕 지점 ‘미슐랭 가이드 2014’ 2스타
△ 2016년 서울 본점 ‘미슐랭 가이드 2017’ 1스타
△ 2017년 서울 본점 ‘미슐랭 가이드 2018’ 2스타
△ 2024년 뉴욕 지점 ‘미슐랭 가이드 2025’ 3스타, 미국에서 한식 최초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신수정 차장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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