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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횡설수설/신광영]“다음 여단장은 너”… 불명예 전역 장성의 계엄 모의 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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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2·3 비상계엄 사태 주요 가담자 중에는 민간인이 한 명 끼어 있다. 6년 전 퇴역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다. 포고령 초안 작성자로 알려진 그는 군에 선관위 장악을 지시하고 계엄 당일 탱크부대장을 호출하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계엄 이틀 전 정보사령관과 대령 두 명을 롯데리아로 불러 모은 것도 노 전 사령관이다. 그는 이들과 햄버거를 먹은 뒤 “계엄이 있을 테니 준비하라”며 부정선거 증거 수집을 위해 중앙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민간인인 그가 군 간부들을 움직인 수단은 인사였다. 햄버거 회동 참석자인 정모 대령은 지난달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전역이 몇 년 남았냐. 다음엔 네가 여단장 하면 되겠다. 내가 많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말에 넘어가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자료를 정리하는 등 요구에 따랐다. 노 전 사령관의 호출을 받고 계엄 당일 정보사로 온 제2기갑여단장(준장)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노 전 사령관이 전부터 “(김용현) 장관님이 너한테 국방부 TF 임무를 맡기려 한다. 너를 정말 귀하게 여기신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전직이 던진 ‘진급 미끼’에 현직들이 걸려든 것은 그가 김 전 장관과 절친한 비선 실세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폐쇄적이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정보사는 현직과 ‘올드보이(OB)’들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정보사령관과 육군정보학교장 등 고위직을 거친 그는 이런 인맥의 중심에 있었다. 그와 가까운 대령급 간부가 김 전 장관 인사청문회 TF에 참여한 뒤 준장으로 진급하는 등 영향력이 드러난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은 6년 전 성추행으로 불명예 전역했다. 술자리에서 여군 교육생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그가 이 사건으로 지위와 명예를 잃게 된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했지만 그는 전역 후에도 군 정보라인의 막후 실력자로 활동했다. 여인형 방첩사령관마저 김 전 장관에게 “노상원을 멀리하라”고 만류했다고 하는데 김 전 장관으로선 은밀한 계엄 준비를 위해 민간인 신분의 비선 측근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 전 사령관은 음지에서 움직이며 군인들의 약한 고리인 인사를 공략했다. 대령은 56세까지 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고 준장은 6년 내 진급을 못 하면 퇴역이다. 정보사 정 대령은 인맥이 없어 진급을 기대하지 못했는데 노 전 사령관의 제안에 욕심이 생겨 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으로 물러난 예비역을 끌어들여 계엄을 기획하게 하고, 그 전직 장성은 후배들의 출세욕을 자극해 반헌법적 행위를 시킨 것이다. 군 인사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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