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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석유회사에 맞서 아마존 숲 지킨 전사의 투쟁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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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땅은 파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펼쳐 든 아마존 원주민들의 모습을 드론으로 촬영했다. ‘아마존 프론트라인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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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에콰도르의 한 법정에 아마존 원주민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아마존 땅을 석유 기업들에 경매로 팔아넘기려는 정부의 계획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아마존 원주민 연대가 승소하면서 서울 면적의 3.3배인 50만 에이커(2013㎢)를 지켜 내게 된 기쁨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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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구한다 네몬테 넨키모·미치 앤더슨 지음, 정미나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만5000원


‘우리가 우리를 구한다’는 이 소송을 이끈 원주민 지도자 네몬테 넨키모의 유년기에서부터 역사적인 재판 승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을 회고한 자전적 기록이다. 네몬테의 일인칭 서술로 되어 있는데, 그가 스페인어로 구술한 내용을 그의 미국인 남편 미치 앤더슨이 영어로 정리했다.



“백인들은 늘 우리를 구원하려 들지. 그러다 나중에 가서는 우리에게 해를 입히고.”



책에서 네몬테의 고모 코페가 하는 이 말에서 책의 제목이 왔다. 책의 영어 원제 ‘We Will Not be Saved’는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새길 법한데, 원제에서 생략된 ‘다른 누군가’의 자리에 들어갈 이들은 우선은 백인 선교사들이고 정부와 석유 회사 등이 그 뒤를 이을 수 있겠다. 책의 앞부분에서 어린 네몬테는 백인 여성 선교사 레이철 세인트가 이끄는 교회에 다니며 사탕과 인형, 장난감 같은 선물을 받아 버릇하다가 급기야는 백인들 같은 가지런한 이를 갖고 싶다며 멀쩡한 이를 망치로 깨뜨리기까지 한다. 백인과 그들의 문명에 대한 선망은 네몬테로 하여금 거짓 신앙 고백을 거쳐 도시의 선교단에 들어가 교육을 받도록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끔찍한 일을 겪고 삶이 망가지기에 이른다. 백인들이 툭하면 입에 올리는 ‘구원’의 정체를 네몬테가 깨닫는 것은 그런 쓰라린 경험을 거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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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와오라니족 지도자 네몬테 넨키모(사진 가운데)가 다른 여성들과 함께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석유 회사의 원유 채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마존 프론트라인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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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내가 숲을 떠나온 이유는 백인들을 믿었던 탓이었다. 나는 그들을 믿었고, 그들이 우리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피부, 치아, 옷, 비행기, 약속에 마음을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그들에겐 한계라는 게 없다는 걸.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한다는 걸.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바꾸고 우리의 땅을 빼앗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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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와오라니족 지도자 네몬테 넨키모. ‘아마존 프론트라인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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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레이철이 원주민들을 동원해 석유 회사 책임자를 환영하는 마을 행사를 주관하는 장면은 선교에서 기업으로 넘어가는 침략과 약탈의 구조를 보여준다. 선교사들은 정부와 손잡고 원주민들의 땅을 석유 회사들에 넘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선교단에서 자신의 부족을 교화하도록 교육받은 네몬테는 개인적 경험과 구조적 인식을 거치며 선교단을 뛰쳐나오고 전사로 거듭난다. 석유 회사가 독성 물질을 방출해 식수원을 오염시키는 바람에 물통을 들고 석유 회사 철조망 앞에 줄을 서서 물을 받아 가는 부족 여자들의 모습을 목격하며 그는 도로에 침을 뱉는다. “우리 숲을 휘감고 구불구불 침투하는 백인 세계에 뱉는 침이자, 사냥꾼과 수확자와 주술사로 살던 내 부족 사람들을 자기 땅에서 맨발로 구걸하는 처지로 내몬, 문명의 보아뱀 같은 혀에 내뱉는 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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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몬테와 와오라니족 주민들이 50만 에이커의 아마존 부족 영토를 보호하고 수백만 에이커를 더 보호할 수 있는 선례를 세운 역사적인 법적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아마존 프론트라인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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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몬테의 투쟁은 아마존의 이웃 부족들과 연대하는 활동으로 확장되고 남편 미치 앤더슨 같은 우호적인 백인들 역시 포괄하는 전 지구적 실천으로 도약한다. 작가이자 활동가로서 아마존 원주민들의 권리 투쟁을 돕겠다는 캘리포니아 출신 백인 남성 미치에게 네몬테는 “왜요?”라고 질문하는데, 그에 대한 미치의 답이 이러하다. “내가 태어난 세계가 이곳을 다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선교사 레이철이 미국인인데다, 아마존 땅속에서 뽑아낸 석유 대부분이 캘리포니아로 보내진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대답일 것이다. 실제로 그가 만든 원주민 권리 단체 ‘아마존 프론트라인즈’는 아마존의 70개 이상 마을에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 장치를 만들고, 온라인 홍보 활동을 통해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에마 톰슨 같은 명사들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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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라니족 지도자 네몬테 넨키모와 ‘아마존 프론트라인즈’ 설립자 미치 앤더슨이 자신들의 딸 다이메와 함께 에콰도르 북부 도시 라고 아그리오 근처의 유독성 원유 폐기물 웅덩이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아마존 프론트라인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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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는 발전이다’라는 표지판이 백인 주도 외래 문명의 기만적인 구호라면, 원주민들이 자연과 생명을 담은 자체 지도를 제작하고 부족 원로들의 입으로 전승하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등의 활동은 문명의 허위에 맞서는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대변한다 하겠다. 네몬테와 미치 부부 및 동지들은 위성 위치 추적 장치(GPS)를 지도 제작에 활용하고 드론으로 촬영한 정글 속 시위 장면을 인터넷에 올려 세계인의 지지와 동의를 얻었고 결국 재판에서 이겼다. 그것으로 싸움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고 앞으로도 더 힘든 싸움이 남아 있겠지만, 네몬테의 투쟁과 승리가 알려준 사실만은 분명하다 하겠다. “우리의 숲과 생활양식을 지키기 위한 이 싸움이 사실상 전 세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사실 (…)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아마존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 모두의 고향인 어머니 대지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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