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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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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사령관들 진술한 ‘체포 지시’ 부인하며 ‘법적 다툼’ 예고

국무회의 ‘문서’·정보사 역할 등 남은 빈칸 채우고 추가 규명 필요성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 12월 4일 새벽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계엄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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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검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군검찰의 형법상 내란·직권남용죄 수사 단계로 넘어갔다. 탄핵 심판과 수사의 기본은 지난 12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실관계’를 A부터 Z까지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이를 바탕으로 이번 계엄 선포·시행이 윤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게 헌법·법률을 위반한 행위였는지, 내란·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볼 수 있다.

군과 경찰의 국회 통제 상황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중계될 정도로 목격자와 기록이 많아 전말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군 지휘관과 정부 관계자들도 양심선언과 폭로를 하며 진상 규명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언제부터 계획했는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지시를 했는지는 극소수 인사만 공유한 정보들이다. 윤 대통령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법적 다툼의 선전포고를 하고 진실 규명보단 계엄의 정당성을 주창하고 있다.

일단 현재까지 나온 사건 관련자들의 국회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계엄 선포·시행 과정을 최대한 사실에 부합하게 재구성해봤다. 어느 부분이 빈칸으로 남아 있는지, 추가로 규명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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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 새벽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하자 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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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경찰청장 등 불러 계엄 관련 지시


윤 대통령이 최초로 계엄을 계획한 게 언제인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지난해부터 주변에 비상조치로서의 계엄을 언급했다는 정도의 진술이 있는 상태다.

군 지휘부가 계엄 상황을 인식하고 대비한 시점은 현재로서는 계엄 선포 이틀 전인 지난 12월 1일로 확인된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전화를 걸어 지시했고, 이를 계엄 상황으로 인식했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곽 전 사령관은 “제가 받은 임무는 국회, 선관위 셋(3곳), 민주당사, 여론조사 꽃 등 6개 지역을 확보하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번 사태 핵심인물인 여인형 전 국군 방첩사령관도 12월 1일 부대 간부들에게 북한 도발 가능성이 있다며 ‘지시 대기하라’고 하달했다. 노상원 전 국군 정보사령관이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에서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과 계엄 이야기를 나눈 날짜도 12월 1일이다. 군이 움직여야 할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분위기는 이때 이미 퍼져 있었다.

12월 3일 오전 여 전 사령관은 ‘북한 오물·쓰레기 풍선 상황이 심각하다’며 부대에 대기를 지시했다. 같은 시점 김 전 장관은 문 전 사령관에게 ‘야간에 임무를 줄 수 있으니 1개 팀이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아예 윤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 안가로 불러 계엄 관련 지시를 한 정황이 확인됐다. 조지호 경찰청장 측 설명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12월 3일 오후 7시쯤 조 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불러 계엄 때 접수할 기관이 적힌 문서를 줬다. 조 청장은 문서가 국방부 양식으로 돼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지시라고 생각해 문서를 찢어버렸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 청장은 이날 오후 7시 40분쯤 주진우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에게 전화해 ‘야간에 경찰 투입이 가능한지’를 문의했다. 경찰이 계엄 시행에 가담하려고 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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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실세 장관으로 꼽히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울산에서 일정을 소화하다 오후 5시 40분쯤 갑자기 서울행 KTX를 탔다. 김 전 장관은 오후 6시쯤 이 전 장관에게 전화해 “용산(대통령실)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8시 40분에야 대통령실에 도착해 계엄 선포 계획을 인지했다고 밝혔고, 국무회의 소집 통보를 받지 못한 국무위원도 여러 명 있었는데 이 전 장관은 신속히 복귀했다. 이런 정황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쪽에선 이 전 장관이 윤 대통령, 김 전 장관과 함께 계엄을 사전 모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모두 충암고 출신이다.

12월 3일 오후 9시부터 모인 국무위원들이 계엄에 우려, 반대를 표명했지만 윤 대통령이 강행했다는 게 국무위원들의 증언이다. 정부는 오후 10시 17분부터 22분까지 5분간 국무회의를 열었다고 주장한다. 오후 10시 23~28분 윤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로 계엄을 선포한 직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최 부총리는 국회에서 “한 장짜리 자료인데 접혀 있었다”며 “그 내용은 ‘비상계엄 상황에서 재정자금을, 유동성 확보를 잘하라’는 문장만 기억난다”고 했다. 조 장관은 “(종이에) 외교부 장관이 조치할 몇 가지 지시사항이 있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경제·외교 여파도 염두에 두고 계엄을 계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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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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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요원들도 대기’ 정보사 역할 무엇인가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마자 대기하던 군과 경찰은 움직였다. 담화가 끝난 지 불과 5분 만에 계엄군은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진입했다. 오후 10시 30~40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체포대상자의 위치추적을 요청한다. 오후 10시 47분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국회 통제를 지시했고, 오후 11시 4분 국회 출입문이 폐쇄됐다. 이후 잠깐 통제가 풀렸다가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오후 11시 25분 정당활동, 집회 등을 금지하는 포고령 제1호를 발포한 뒤 다시 국회는 전면 통제됐다.

윤 대통령은 이곳저곳에 직접 전화해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이 오후 10시 53분쯤 자신에게 전화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여 전 사령관이 통화에서 체포대상자의 위치추적을 요청했다고 했다. 체포대상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이었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4일 0시 30~40분 윤 대통령이 전화해 “아직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국회에서 증언했다.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도 윤 대통령이 상황이 어떤지 묻는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에서 이 전 사령관은 “국회 현장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수차례 전화를 받았고 ‘끌어내라’는 지시를 들었다”며 “계엄 해제 표결이 가까워오자 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전화해 ‘왜 그걸 못 끌어내냐’고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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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내용에 따르면 비슷한 시각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도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에게 전화해 “이재명·한동훈·우원식을 최우선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사령관들은 이 과정에서 김용현 전 장관과 수차례 통화했다고 밝혔다. 유혈사태가 촉발될 위기도 있었다. 시민들과 국회 보좌진 등이 군인들의 국회 진입을 막는 상황에서 계엄군 지휘부는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과 같은 방법을 논의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국회에서 “테이저건과 공포탄은 국민에게 위해가 될 수 있어 금지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여러 군 지휘관은 계엄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폭력 진압보단 소극적 태도로 임했다고 해명했다.

정보사령부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더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12월 3일 정보사 산하 HID 부대(북파공작원 특수부대)가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인근에 대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국회 증언에서 이들이 대기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임무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월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들의) 임무는 선관위에 가서 과장들과 핵심 실무자 30명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케이블 타이로 손목과 발목을 묶고 복면을 씌워 B1 벙커로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군을 이용한 북한과의 국지전 유도, 주요 인물 암살 의혹도 불거졌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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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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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에 전역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어떻게 ‘롯데리아 회동’을 할 수 있었는지, ‘윗선’ 누구와 소통했는지 밝히는 게 중요하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이 부하 군인에게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 중이다. 노 전 사령관이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자료를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윤 대통령이 이런 자료를 보고받았는지는 비상계엄의 동기와도 관련이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계엄 선포의 이유 중 하나로 주장했다. 공정한 직무수행이 아닌 일을 군인에게 시켰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여러 증언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무력 진압, 체포 지시를 부인하며 계엄이 정당했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는 지난 12월 19일 취재진에게 “대통령께서는 출동한 군경에게 시민들과 충돌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대통령은 법률가인데 체포란 얘기를 왜 하겠나”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있고,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김용현 전 장관은 “구국의 일념으로 끝까지 싸우겠다”며 검찰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윤 대통령은 사건 관련자들의 양심선언, 폭로의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44년 만에 시민을 덮친 계엄의 밤, 내란의 진실을 놓고 법정에서 대통령과 그 부하들이 공방하는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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