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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IT·게임 세상]광장을 밝힌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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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연말은 기억할 새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가곤 했는데, 올해 12월만큼은 유난히 더디게 느껴진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두가 공유하는 감각일 것이다. 12월3일 계엄령 선포부터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한날한시도 뉴스에서 눈 뗄 겨를이 없었다. 평일엔 뉴스를 계속 들춰보다 주말이면 송년모임 대신 여의도 집회에서 지인들을 만났다. 잊고 지내던 오랜 인연들도 여의도 골목 어귀에서 우연히 마주쳐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사람들이 여의도에 인산인해를 이뤘던 만큼, 화장실이며 카페 등 온갖 장소가 만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위해 여의도 내 건물에서 자발적으로 화장실을 개방해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개방된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손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화장실 지도 또한 만들어졌다. ‘커뮤니티매핑센터’가 기획한 화장실 지도는 여의도에 이어 최근 집회가 이어지는 광화문과 안국역 일대까지 안내됐다. 그외에 시민들이 다른 이들을 위해 선결제한 카페들의 위치와 목록을 만든 지도도 공유되었다.

지도뿐만 아니다. 한 시민은 집회에서 울려 퍼진 노래들을 정리하여 노션(Notion) 웹페이지로 만들기도 했다. 웹페이지에는 가사 중 어느 부분이 특히 심금을 울리는지, 어디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는지 링크까지 빼곡하게 적혀있다. 또한 핫팩이나 수건 등 집회에 갈 때 챙기면 좋은 물건과 각종 노하우도 SNS에 활발하게 게시됐다.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서비스가 저항과 연대의 플랫폼으로 탈바꿈하던 순간이었다.

시민들이 직접 개발한 웹서비스와 디자인 팻말도 돋보였다. 정보공개센터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국회의원의 지역구를 이미지맵 형태로 공개하고, 개별 지역을 클릭하면 각 의원들의 이력 등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가하면 계엄 해제 표결을 포함하여 계엄령 이후 지금까지 개별 국회의원들이 의결에 참여했는지, 참여했다면 어떤 표를 던졌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 ‘국회101(https://assembly101.kr)’도 공개됐다. ‘국회101’은 익명의 시민 개발자가 제작한 웹사이트로, 개설 이후 5일여간 7만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모임 FDSC에서는 계엄령 선포 직후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 등의 메시지를 기획 및 디자인하고 팻말을 직접 인쇄해 배포했다. 이 모든 작업물은 12월3일 계엄령 선포 직후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쏟아지는 뉴스를 따라가기만도 벅찼던 시간인데 그사이에도 시민들은 무언가를 열띠게 만들고 공유했다. 계엄 선포 이후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많은 결과물이 어떻게 등장한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2024년의 기술 이슈는 사실 AI와 빅테크가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적 기술력과 어마어마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글로벌 AI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한 해였다. openAI, 엔비디아, 엔트로픽 등의 기업이 본격적으로 세를 확장했고 1년 새 몇 차례나 대규모 업데이트를 거듭하며 고도화된 성능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무엇보다 광장을 지켜낸 시민들의 기술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다. 여러 사람이 일일이 꽂아놓은 지도의 수많은 핀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알리는 웹사이트…. 이 서비스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지와 서로를 도우려는 다정함이 합쳐진 소중한 결과다. 지금의 필요에 발맞춰 빠르게 등장한 서비스인 만큼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록해두어야겠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은 광장에 나서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를 돕는 기술을 만드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노라고. 그 기술들로 하여금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더 용감하게 꽃피웠다라고.

경향신문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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