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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편법승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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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사에 일감 몰고 지주사 만들기

공정위 "2세 사업승계 마련하는 과정"

한국금융신문

▲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한국금융신문 곽호룡 기자] 레미콘, 골재 등 건자재 특화 기업 삼표그룹(회장 정도원)은 한때 재계 서열 29위까지 올랐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해체된 강원산업그룹에 뿌리를 둔다.

강원산업그룹 창업주 고 정인욱 회장 둘째 아들 정도원 회장이 남아있던 계열사를 모아 2004년 세운 게 삼표그룹이다. 2016년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를 인수하는 등 올해 기준 재계 84위 대기업으로 다시 성장했다.

정도원 회장은 아들(정대현 부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터 구체적으로 준비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굳이 그 출발점을 따진다면 아마도 지난 2013년 즈음이 될 것이라는 게 재계 관측이다.

그 해 삼표그룹은 지주·사업회사 물적분할을 통해 ㈜삼표가 삼표산업 등 계열사를 거느리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여느 대기업들처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처럼 보였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당시 그룹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하던 삼표로지스틱스가 정대현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던 대원이라는 회사에 흡수합병되었기 때문이다.

대원은 정도원 회장이 지난 2004년 세운 건설기계 대여업체인데, 아들에게 증여한 사실상 개인회사였다. 삼표로지스틱스를 합병한 대원은 다시 대원과 신대원으로 인적분할한다.

연이어 대원은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표로 흡수합병되고, 남은 신대원이 나중에 사명 변경으로 현재 에스피네이처가 됐다.

대원은 지주사 ㈜삼표로 합병되면서 결과적으로 ㈜삼표 지분율은 정대현(0→12.7%), 정도원(99.79%→83.63%)으로 변경됐다.

이후에는 정대현 부회장의 에스피네이처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에스피네이처는 2017~2019년 삼표기초소재, 남동레미콘, 경헌, 네비엔, 당진철도 등 계열사를 흡수했다.

이 시기는 에스피네이처가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통해 급성장하던 때였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삼표산업은 2016~2019년 4년간 에스피네이처로부터 시장 가격보다 높은 단가에 분체(FA, SP 등 시멘트 대체제)를 구입했다.

그런데 에스피네이처는 삼표산업을 제외한 다른 기업에는 정상가로 분체를 공급했다. 삼표산업과 거래를 통해 에스피네이처가 얻은 추가 이윤은 7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바탕으로 에스피네이처는 국내 분체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신문

실제 에스피네이처는 2016년 매출 842억원, 영업이익 113억원에서 2019년 매출 5529억원, 영업이익 276억원으로 4년 만에 각각 557%, 144% 실적이 급증했다.

공정위는 이를 “동일인(총수) 2세 정대현으로 경영권 승계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증여세를 회피하는 편법 승계로 의심하는 이유다.

2차 승계 플랜은 2020년 ㈜삼표의 600억원 규모 유상증자다. 덩치를 키운 에스피네이처가 참여해 지분 19.43%를 확보했다. 정 부회장(11.34%)과 그가 지배하는 에스피네이처(19.43%)가 지주사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이어 2023년 삼표산업이 ㈜삼표를 흡수합병한다. 인적분할 10년 만에 역합병을 통해 다시 한 회사가 된 것이다. 합병비율은 ㈜삼표와 삼표산업이 1.87대 1로 결정됐다. ㈜삼표 주요 주주인 정대현 부회장(11.34%→5.22%) 지분율이 대폭 줄었다. 합병 직후 진행된 삼표산업 유상증자에 에스피네이처가 참여해 지분율을 18.23%까지 끌어올렸으나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승계 마지막 퍼즐인 ‘자사주 마법’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합병 이후 ㈜삼표가 보유한 삼표산업 지분은 자사주로 전환됐다. 지분율은 44.73%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향후 인적분할을 진행하면 부활해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 당국이 본격 조사에 나서면서 무려 10년 넘게 진행되던 삼표그룹 승계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9~10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삼표그룹 본사와 관계사 에스피네이처 등 10여곳을 공정거래법 위반, 횡령, 배임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표그룹은 회사를 물려 주기 위한 온갖 승계 계획이란 계획을 다 동원한 거 같다”며 “규제 당국 조사에 이은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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