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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백성호의 현문우답] (성탄인터뷰) 예수의 이웃사랑 실천하는 이, 그가 작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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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4일 경기도 용인에서 ‘성서신학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정양모(90) 신부를 만났다. 그는 프랑스에서 3년, 독일에서 7년간 공부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를 비롯해 예수가 썼던 아람어와 히브리어, 그리스어와 라틴어까지 능통하다. 광주가톨릭대와 서강대, 성공회대 교수를 역임한 그에게 ‘예수와 성탄’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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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모 신부는 "수도원의 수도자들 중에도, 평신도들 중에도 더러 부활하신 예수님과 마음으로 기도하며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생생하게 정을 나누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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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성탄절은 왜 12월 25일인가.

A : “정확한 예수의 탄생일은 아무도 모른다. 300년 동안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로마제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준 게 서기 313년이다. 로마인은 태양을 신으로 모시고, 태양 탄생일(12월 25일)을 성대하게 치렀다. 그리스도교인은 ‘당신은 창공의 태양을 섬기지만, 우리는 마음의 태양을 섬긴다. 그게 예수님이다’며 같은 날 성탄절을 지냈다. 거기서 출발했다.”

Q : ‘예수 오심’의 의미는.

A : “예수 성탄을 맞이하면 자연스럽게 부처님오신날을 생각하게 된다. 부처님은 아주 신들이 난무하는 세계에 태어났다. 지금도 힌두교 사원에 가보면 안다. 사원 안에도, 사원 밖에도 숱한 신들을 조각상으로 새겨놓았다. 신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다. 부처님은 그런 신들을 섬기길 바라지 않았다.”

Q : 그럼 무엇을 원했나.

A : “대신 이렇게 말했다. ‘쓸데없는 것들 물렀거라! 나 스스로 생각해서 진리를 깨닫겠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자기 자신이 등불이고, 법이 등불이다. 신들의 계시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소위 ‘자립 종교’를 세운 셈이다. 신에게 기대지 말아라. 유대교인이나 기독교인은 죽어도 그 말을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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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모 신부는 "예수님은 법이면 다 법이냐. 법 다워야 법이지라며 율법 중심의 유대 사회에 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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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예수님은 어땠나.

A : “예수님은 신들의 횡포가 난무하는 세계가 아니라, 유일신 신앙 세계에서 자랐다. 신을 향한 신앙을 배척한 게 아니라, 정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다시 말해 율법 중심의 하느님 대신에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신을 열망하신 거다.”

이 말끝에 정 신부는 예수 당시 유대 사회가 얼마나 율법 중심적이었는지 설명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공부한 정 신부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미국 연구소와 프랑스 연구소에서 각각 6개월씩 산 적이 있다. 당시 유대 사회 안으로 깊이 들어가 ‘필드 워크(현장 공부)’를 했다.

“유대인에게 신은 ‘율법을 만들어주는 신’이다. 율법의 가짓수가 무려 613가지다. 그중 절반이 ‘~하라’는 명령이고, 나머지 절반은 ‘~하지 말라’는 금령이다. 예수님은 명령과 금령을 하달하는 신 대신, 우리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신, 사랑의 신을 말씀하신 거다.”

Q : 유대교의 율법, 지금은 어느 정도인가.

A :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이 600만 명이다. 그중에서 가톨릭 신자는 5000명, 개신교 신자는 2000명 정도다. 율법의 종교에서 보면 이들은 배신자다. 유대인인데도 신이 주신 율법을 지키지 않으니까. 군 복무를 하다가 들키면 불명예 제대이고, 공무원을 하다가 들키면 해고 대상이다. 영어로 이들을 ‘메시아닉쥬(Messianic Jew, 그리스도교를 믿는 유대인)’라고 부른다. 유대인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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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모 신부가 자택의 벽에 걸린 그림 앞에 서 있다. 정 신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예수의 그림이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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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럼 뭐라고 부르나.

A :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란 뜻이다. 크리스천은 ‘메시아의 사람들’이란 의미다. 유대인이 보기에 너무 고귀한 명칭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을 히브리어로 ‘노스르’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나사렛 시골의 패거리’란 뉘앙스가 담겨 있다.”

Q : 2000년 전, 예수 당시에는 어땠나.

A : “예수는 반동분자이고 혁명가였다. 유대 율법에 ‘안식일을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대목이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율법을 지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안식일이 엿새 일 하면 하루 쉬라는 복지를 위해 생겨난 거라고 봤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저놈 죽여라’ 하며 예수를 죽였다.”

정 신부는 신학적으로, 혹은 신앙적으로 예수를 제대로 알려면 세 토막을 봐야 한다고 했다. “예수의 생애와 예수의 죽음, 그리고 예수의 부활 신앙이다. 이 셋을 봐야만 예수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 전도에 앞장 선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 성장 등 예수님의 사생활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다. 위인의 탄생에는 전설이 생기게 마련이다.”

Q : 예를 들면 어떤 식인가.

A : “부처님의 탄생도 그렇다. 마야 왕비가 룸비니에서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붙들고 옆구리로 아기를 낳았다. 갓난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 상하로 일곱 걸음씩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말까지 했다. 부처님은 위대하신 분이니까, 잉태 탄생도 화려하게 꾸미는 거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사람의 잉태와 탄생, 그리고 성장에는 신화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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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모 신부는 "그리스도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예수의 생애, 예수의 죽음, 예수의 부활 신앙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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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신부는 예수의 생애와 죽음, 부활을 다시 강조했다. “예수님의 생애는 흘러갔다. 예수님의 죽음도 흘러갔다. 흘러간 과거다. 우리가 지금 마음속에서 모시는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흘러간 예수님은 회상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현존하니까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을 나누는 거다.”

Q : 부활하신 예수님과 정을 나눈다. 더 풀어달라.

A :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을 회상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기 마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생생하게 정을 나누는 분들도 있다.”

Q : 그렇게 예수와 통하려면.

A : “선한 마음을 키우자. 자비심을 키우자.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 한세상 살아가는 게 불쌍하지 않나. 예수의 이웃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 그가 ‘작은 예수’다. 그게 예수와 통하는 길이고, 하느님과 통하는 길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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