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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환갑 나이에 물 심부름…복지관 갔더니 ‘애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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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3월 서울 서초구 방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관상학 강좌를 듣고 있다. 앞에서 둘째 줄 가운데 정희선씨가 앉아 있다. 방배노인종합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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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댄스를 배우러 갔는데, 선배 회원님들이 저한테 ‘아이고~ 애기가 왔네, 이렇게 젊은 사람이 여기 왜 왔느냐’고 하시는 거예요.”



지난달 8일, 서울 서초구 방배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정희선(62)씨는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난 2월 교직 생활을 마친 뒤 복지관을 다니기 시작한 그는 새 강좌가 열릴 때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 있을 때는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 여기 오니까 막내가 됐다”고 했다. 60대 후반부터 70대 초중반 연령대의 비중이 큰 복지관에서 60대 초반은 ‘젊은이’에 속한다.



희선씨는 올봄 복지관의 스마트영상 제작 강좌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손주의 돌잔치 동영상을 직접 만들었다. 관상학과 동화구연, 웰다잉 등의 강좌를 통해 평소 관심 분야를 배우고 복지관과 서초구의 홍보단 활동에도 참여한다. 틈틈이 손주도 돌봐야 하는 그의 일상은 은퇴하기 전보다 더 분주하다.



만 65살 이상만 이용이 가능한 경로당과 달리, 각 지방자치단체 소관의 노인복지관은 상대적으로 회원 가입의 문턱이 낮다. 60살부터 다닐 수 있다. 이 때문에 희선씨처럼 노인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60대 초반 고령자들도 복지관을 찾는다. 이창열 방배노인종합복지관장은 “청년들의 눈에는 60대와 80~90대가 같은 노인으로 보일는지 몰라도 각자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부모와 자식 간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아버지 연배의 어르신을 만나면 젊은 노인들은 물이나 담배 심부름을 해야 한다. 그만큼 세대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복지관 강좌도 연령대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을 챙기는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려는 어르신들이 많다. 또 다른 복지관 회원인 이아무개(75)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엔 ‘건강백세’ 운동 교실을 다니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치매 예방을 위해 ‘뉴런두런’ 강좌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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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방배노인종합복지관 체력단련실에서 근력운동 중인 어르신의 모습. 방배노인종합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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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몇살부터인지를 따지는 논의에서 노인세대 내 분화도 중요한 쟁점이다. 65살 이상 노인이 1천만명을 넘기면서, 더 이상 이들을 동일한 세대로만 간주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기대수명이 올라가고 노인으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노인과 늙은 노인의 활동 양태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개개인의 노화 속도에 따른 차이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노인 연령을 올리자고 제안한 이중근 대한노인회장(부영그룹 회장)은 90살 이상을 ‘상(上)노인’으로 구분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83살에도 아직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본인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으로 보인다.





‘영 올드’가 노인의 59%, ‘올드 올드’ 비중도 차츰 커져





학계에선 74살 이하를 전기 노인, 75살 이상을 후기 노인으로 구분해왔다. 더 세분화해서 영 올드(young-old, 65~74살)와 미들 올드(middle-old, 75~84살), 올드 올드(old-old, 85살 이상)로 분류하기도 한다. 영국에선 아예 노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인생의 시기를 4세대로 구분하는 시도도 있었다. 은퇴 뒤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사회활동 참여에 적극적인 고령층을 3세대로, 전통적인 개념의 노인을 4세대로 규정한 것이다.



연령대별 인구 분포는 어떨까. 11월 주민등록인구 통계를 기준으로, 영 올드는 598만3042명으로 65살 이상 노인 인구(1019만9204명)의 58.7%를 차지한다. 이어 미들 올드는 312만1226명(30.6%)이고, 올드 올드는 109만4936명(10.7%)이다. 기대수명이 차츰 올라가면서 후기 노인의 비중도 높아지는 추세다. 10년 전인 2014년에는 85살 이상이 전체 노인의 8.1%에 그쳤었다.



이 관장이 복지관을 운영하면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자는 크게 4그룹으로 나뉜다. 우선 60대는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인 일자리 정보에 관심이 높다. 다음으로, 복지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강좌에 적극 참여하는 이들은 70대 초중반이다. 실질적으로 은퇴를 했지만 사회활동을 이어가려는 욕구가 큰 연령대다. 복지관 2~3곳을 가입해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노인들도 있다.



노화 속도가 빨라지는 70대 후반이 되면 경로당을 찾는다고 한다. 다양한 강좌가 개설돼 있는 복지관과 달리, 경로당은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는 활동이 주를 이룬다. 한마디로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귀가 시간도 경로당은 오후 2시 정도로 복지관보다 훨씬 빠르다. 마지막 그룹은 시설 노인들이다.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에 머무른다. 이 관장은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이는 어르신들에게 연락을 드려보면 대부분 질환이 생긴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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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에서 겨울나는 백수 앞둔 할머니. 2018년 1월26일 광주 북구 운암1동 벽산블루밍 아파트 내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사흘째 이어지는 한파를 견디며 겨울을 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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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살 이상 노인이 65~74살보다 빈곤율 높아





연령대별 노인의 특성에 대한 연구 분석 결과도 여럿 나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의 사회적 불안과 사회보장의 과제’ 보고서를 보면, 65~74살은 노년기에 진입했어도 ‘도구적 일상생활 수행능력’(IADL·Instrumental Activities of Daily Living)에 큰 문제가 없다. IADL은 구체적으로 식사 준비와 세탁, 금전 관리, 근거리 외출, 유선을 통한 의사소통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75살 이상 노인이 신체적 혹은 심리적으로 기능 손상을 경험하고 일상생활에서 다른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교된다. 또 젊은 노인들은 △과거 노인과 달리 일정 정도 경제력을 갖춘 집단이며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고 △사회참여도가 활발한 편이며 △정보화기기 활용능력이 우수한 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국제경영학)인 마우로 기옌은 ‘2030 축의 전환’에서 “2030년이 되면 70대의 평균적인 삶은 지금 50대의 평균적인 삶과 엇비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기 노인으로 갈수록 가난한 노인이 많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승희 연구위원 분석에 따르면, 2021년 65~74살 노인의 빈곤율은 27.6%이지만 75살 이상은 51.0%였다. 두 집단 간 격차가 약 24%포인트에 이른다. 후기 노인은 1940년대생과 그 이전 출생 세대다. 동일 연령대로 조정해서 비교하더라도 이들 집단의 빈곤율이 더 높았다. 더 늦게 태어날수록 빈곤 정도가 덜하다는 세대별 특성이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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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서초구 방배노인종합복지관 강당에서 에어로빅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방배노인종합복지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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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노화 속도·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도 커





노인의학적으로는 ‘노쇠’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진행된 상태를 노인으로 본다. 노화는 시간과 유전자, 환경이 상호작용해서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변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노쇠 정도는 노화 과정이 누적됨에 따라 고장 난 정도를 의미한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는 “(임상 노쇠 척도를 9단계(매우 건강~임종을 앞둔 상태)로 구분할 경우) 넓은 의미의 노인은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식욕이 이전 같지 않으며 힘이 자꾸 빠지는 등의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는 4단계(아주 경미한 허약)부터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돌봄 요구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5단계(경미한 허약)부터는 좁은 의미의 노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분석 결과를 종합하면, 2019년 기준 넓은 의미의 노인은 평균적으로 73살, 좁은 의미의 노인은 77~78살 정도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연령이 아니라 개개인의 노쇠 정도에 따라 노인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원 전문의의 생각이다. 그는 “이미 노쇠 척도는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에 활용되고 있는데, 다른 정책들도 유기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연계하는 통합 판정 도구가 필요하다”며 “현재는 노인 정책이 분절화돼 있고 개인이 알아서 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운전 가능한 고령자의 연령 기준이 모호한 측면이 있는데,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는 5단계가 되면 운전도 하면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노화 속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노인 연령 논의에서 중요한 지표로 쓰이는 건강수명의 소득수준에 따른 격차가 이런 문제를 드러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부 산출 지표(2021년 기준)로 보면, 소득 상위 20%의 건강수명은 73.4살인 반면 하위 20%는 65.2살에 그친다. 8.2살이나 차이가 나는 것인데, 이런 격차는 10년 전(7.1살)보다 1.1살 더 벌어졌다. 이런 차이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수준에 따라, 앞으로도 더 벌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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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연령 논의에서 살펴야 할 것들





이처럼 노인 연령에 대한 논의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한국노년학회장)는 “결과적으로 노인 정책의 혜택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가도록 해야 하는데, 65살 이상이라는 행정 편의상 기준만 앞세우다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미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노인에게는 일자리를 줘야 하고 그렇지 못한 노인들에게는 소득 보장과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인 집단을 세분화하는 정책이 반드시 노인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일본에선 2008년부터 75살 이상 노인을 후기 고령자로 구분하고 별도의 의료보험 제도를 적용시켰는데, 피부양 혜택을 받던 노인들도 새롭게 보험료를 내야 해 논란이 일었다. 재정 부담이 곤혹스러운 일본 정부는 고령자 부담을 차츰 늘려가는 추세다.



김미곤 원장은 “노인 연령을 논의하려면 몇가지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연령 기준을 올려서 절약된 예산도 노인을 위해 써야 한다는 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며 “또한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사회 전반의 제도를 손질하는 패키지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②노인은 몇살부터인가 (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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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우리는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섭니다. 한때 폭발적 인구 증가가 걱정거리였던 나라가 지금은 빠르게, 그것도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의 본질은 인구 감소보다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에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들을 격주로 하나씩 톺아봅니다.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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