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상품권 통합 맡은 조폐공사
기존 업체들 상대로 횡포 논란
그래픽=김성규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현재 지류(종이)형과 카드형, 모바일 등 3종류로 나뉘어 있는 온누리상품권 발행 기관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과 조폐공사가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통합 작업이 늦어지면서 기존 업체가 상품권을 계속 발행하게 됐는데, 통합을 맡은 소진공과 조폐공사는 이 비용을 제대로 보전해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또 기존 업체의 영업 기밀인 핵심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하겠다는 약속도 미루고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표시 금액보다 5~10% 저렴하게 구매해 전통시장과 골목 상점 등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이다. 그동안 종이형은 조폐공사, 카드형은 KT, 모바일은 비즈플레이라는 업체가 발행해 왔다.
당초 내년 1월 1일부터는 조폐공사가 카드형과 모바일까지 통합해 발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통합 시점이 3월 1일로 두 달 연기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을 기존 업체들에 떠넘겼다는 것이 갑질 논란의 핵심이다. 업계 안팎에선 “공공기관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대외적인 신인도나 정부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들어줄 수밖에 없는 민간 업체의 처지를 악용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
◇추가 비용은 기존 업체에 떠넘겨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진공과 조폐공사는 지난 11월 말에 온누리상품권 통합 발행 시기를 내년 3월 1일로 두 달 늦추기로 합의했다. 내년 2월까지는 기존 업체들이 그대로 발행을 맡게 된 것이다. 기존 업체들과 합의도 마쳤다는 게 두 기관의 입장이다. 소진공 관계자는 “이번 달 대형 소비 행사인 동행축제와 다음 달 설 명절 등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활발한 기간이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며 “합의 과정에서 기존 업체들의 요구 사항도 충분히 반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 발행이 늦어진 것은 조폐공사의 준비 부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플레이 관계자는 “조폐공사가 구축하고 있는 플랫폼 데이터베이스(DB)에 문제가 있고, 온누리상품권 구매를 위해 필요한 카드사와의 연동 작업도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며 “두 달간 발행 업무를 떠안으면서 추가로 들어가게 된 인건비와 데이터 관리 비용 등만 3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비즈플레이 측은 소진공과 조폐공사의 합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비즈플레이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온누리상품권 발행이 끊기면 안 된다’며 협조를 요청했다”며 “혹시 비즈플레이가 협조하지 않아 온누리상품권을 발행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핵심 기술 보안 약속도 안 해
조폐공사가 비즈플레이 측에 ‘플랫폼 설계도(ERD)’를 요구한 것을 두고도 ‘갑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RD는 도형을 활용해 플랫폼 안에서 데이터가 어떤 흐름을 거쳐 처리되는지를 나타낸 도표다. IT 기업들의 핵심 기술 자료로, 외부로 유출될 경우 큰 타격을 받는다.
그래픽=김성규 |
비즈플레이는 지난 11월 중순쯤 조폐공사로부터 ERD를 공유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보내주는 대신 다른 업체와 공유하거나 모바일 온누리상품권 발행 외에 다른 사업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정보 보안 확약서 작성을 요청했다. 조폐공사는 답을 미루다가 한 달쯤 후인 지난 19일 뒤늦게 비즈플레이가 아니라 소진공에 확약서를 보냈다. 조폐공사측은 “상품권 사업을 총괄하는 소진공도 ERD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소진공을 통해 ERD를 공유받았고 기술 탈취 방지도 소진공에 약속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확약서에는 기술 보안에 대해 소진공과 의논하겠다는 내용만 있을 뿐, 비즈플레이가 기술 보호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빠졌다. 기술이 유출돼도 비즈플레이는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비즈플레이 관계자는 “확약서 수정을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조영상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ERD는 플랫폼 개발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하고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며 “만약 ERD를 요청한다면 정보 보안 확약서를 제출하는 등의 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온누리상품권 통합 발행
온누리상품권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상품권이다. 지류(종이)형과 카드형, 모바일 등 세 가지다. 지류형은 조폐공사, 카드형과 모바일은 각각 KT와 비즈플레이가 발행해왔는데, 내년부터 조폐공사가 카드형과 모바일까지 통합해 발행하기로 했다.
[강우량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