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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단독] 김용현 "상원아, 뭘 더 어쩌겠냐" 노상원 "살길 찾아야죠" [계엄, 그날의 재구성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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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12·3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것은 지난 4일 새벽 1시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해제 선포는 3시간여 뒤인 새벽 4시 27분에야 이뤄졌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검찰·경찰·공수처 등의 전방위 수사로 민간을 중심으로 한 ‘계엄 배후 세력’의 전모도 드러나고 있다. 당시 현장의 군 고위 관계자들을 포함해 10여 명의 군·경 관계자와의 인터뷰, 수사기관 진술 등을 종합해 그날을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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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전 모의 의혹의 핵심 축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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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실 회의’ 뒤 김용현·노상원 수차례 통화



국회 의결 직후 윤 대통령은 국가안보실 인성환 2차장, 최병옥 국방비서관 등과 합참 전투통제실을 찾았다. 이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당시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등과 전투통제실 내에 별도로 마련된 결심지원실에서 오전 1시 20분부터 1시 50분쯤까지 30분간 회의를 열었다. 이른바 ‘결심실 회의’다.

착잡한 공기 속에서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 “거봐, 부족하다니까. 국회에 1000명은 보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어떡할 거야”라고도 했다. 기존 국회 투입 병력(500여명)의 2배를 보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후 국회법 법령집을 찾아본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 박 총장 등 극소수만 남긴 채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대통령이 떠난 뒤 김 전 장관은 결심실에서 여러 사람과 통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됐다. 특히 ‘계엄 기획자’ 의혹을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육사 41기·예비역 소장)과는 오전 1시쯤과 3시쯤을 포함해 수차례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을 나눴던 기록이 나왔다. 두 사람의 통화 가운데는 김 전 장관이 “응, 상원아” “이제 뭘 더 어떻게 하겠냐…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됐다”는 체념조로 말을 건넨 경우도 있었고,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살길을 찾아야죠”라는 취지로 말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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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김용현, 4사령관 회의서 “중과부적…최선 다했다”



김 전 장관은 오전 2시 30분부터 3시 10분쯤까지 대통령실 회의에 참석했다. 국방부로 복귀한 김 전 장관은 오전 3시 20분부터 25분까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강호필 지상작전사령관 등과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중 지작사는 유일하게 계엄에 병력을 투입하지 않은 부대였다. 이와 관련 지작사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계엄은 사전에 알지 못했다. 경계 태세 격상에 따라 합참 지시로 1시간 여 전부터 화상회의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장관이 나타났다”며 “지작사 병력이 동원됐다면 이미 문제제기가 나오지 않았겠나. 어떤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도 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5분 회의에서 사령관들에게 “(국회·선관위 등) 현장에 투입됐던 장병들이 복귀하면 잘 격려해주라”며 “모든 책임은 장관이 지겠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통제권자 명에 의거해 노력했다” “중과부적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등의 당부를 전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같은 녹취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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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을 주도해 내란 혐의로 구속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뉴스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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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 전 장관은 계엄 해제 국무회의 참석 차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윤 대통령은 오전 4시 27분 계엄 해제를 발표하며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나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며 “국무회의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지만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3분 뒤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됐다.

4일 오후 점심 식사를 마친 김 전 장관은 1시쯤 윤 대통령 관저를 찾은 뒤, 5시쯤 국방부에서 김선호 차관, 전하규 대변인 등과 함께 국회 국방위원회 대비 회의를 했다. 공수처 등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회의에서 “제가 대통령께 헌법·계엄법을 근거로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다” “건의 배경은 대통령 담화문에 다 있다” “계엄 전 상의 상대는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 “국회 투입 병력은 공포탄을 휴대했고, 실탄 개인 지급은 없었다” “(국회의장 및 여·야 대표 체포 지시에 관해) 구체적인 병력 운용을 모른다” 등의 답변을 논의했다. 김 전 장관은 이튿날 오전 8시 30분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김 전 장관의 사의에 따라 면직이 재가됐다”고 밝히면서 국방위에 출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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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국회 잔디광장에 2차 비상계엄에 대비해 계엄군의 헬기 착륙 방지 목적으로 대형 버스와 국회 사무처 관계자들의 차량이 배치돼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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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야당은 계엄 해제까지의 ‘3시간 공백’을 근거로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논의했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국회 가결 직후 계엄군이 철수를 시작했지만, 일부 병력은 오전 2~3시까지 국회 주변에 대기 상태로 남아있었으며, 오전 3시에도 충남 계룡대에서 육군본부 장성·영관급 간부 34명을 실은 용산행 버스가 출발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버스는 박 총장 지시로 출발 30분 뒤 다시 복귀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실은 “2차 계엄 논의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란 입장이다.



‘햄버거 회동’ ‘판교 회동’…예비역 OB들, 계엄 주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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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앞두고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이 회동했다는 경기 안산의 롯데리아 매장.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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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직후 검찰·경찰·공수처 등 수사기관은 일제히 ‘내란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군검찰이 합세한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8일 새벽 자진출석한 김 전 장관 긴급체포를 시작으로 여인형·곽종근·이진우·박안수 사령관 등 주요 계엄 실행 세력을 구속했다. 경찰과 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군경찰)는 사상 초유의 공조수사본부를 꾸리고 정보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계엄 배후 세력 수사에 집중했다. 그 결과 지난 18일 노 전 사령관, 지난 20일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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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현재 경찰은 김 전 장관 지시로 만들어진 군 내 사조직 ‘정보사 수사2단’의 결성 경위와 활동 범위 등을 수사하고 있다. 수사2단은 정보사의 이른바 ‘노상원 라인’ 60여명으로 구성돼 ‘선관위 장악’을 목표로 계엄을 사전에 모의·주도한 세력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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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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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직원 납치·감금 논의가 있었다(정보사 소속 정모 대령)”는 두 차례의 ‘12·1, 12·3 롯데리아 회동’을 비롯해, 수 개월 전부터 계엄을 대비한 북파공작원(HID) 요원 선발 등이 있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앞서 문 사령관은 공조수사본부에 “김 전 장관으로부터 ‘노상원의 지시가 내 지시’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종근·여인형 사령관 역시 “10월, 11월에도 계엄 모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상태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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