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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김도훈의 엑스레이] [51] 귤을 위부터 깔까 아래부터 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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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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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면 잘 안 먹는 음식이 있다. 과일이다. 좋아하는데 챙겨 먹게 되질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전국 많은 독신은 비타민C와 과즙 100%라 주장하는 주스를 삼키며 과일을 먹었다 스스로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혼자 살면 과일이 먹기 힘든 이유는 귀찮아서다. 혼자 사는 부지런한 사람은 오늘도 과일을 깎아 먹었다며 딴지를 놓고 싶을 것이다. 혼자 사는 게으른 사람은 내 말에 수긍할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대체로 게으르다. 과일을 먹으려면 게을러서는 안 된다.

당신은 평생 어머니가 깎아주는 과일을 먹고 자랐을 것이다. 혼자 살면 과일이 절로 알맹이만 도착하는 간단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맛있는 과일을 알아보고 살 줄 알아야 한다. 깎을 줄 알아야 한다. 껍질은 제때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초파리는 독신의 게으름을 먹고 자란다.

대신 귤은 잘 먹는다. 간단하게 까서 먹는다는 장점 덕이다. 초록색 꼭지가 달린 윗부분부터 뜯는 게 정석이다. 여기서 또 딴지를 놓고 싶은 독자가 생겼을 것이다. 이 원래도 이상한 양반은 귤을 왜 그렇게 까?

지난주 나는 혁명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세상에는 귤을 아랫부분부터 눌러서 까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평생 꼭지를 뜯어 귤을 깠다. 부모님도 그랬다. 친구들도 그랬다. 그런데 상식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에 충격을 알렸더니 아래부터 까는 게 상식이라 평생 믿었던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는 남을 참 모른다. 오십이 되도록 남 귤 까는 방식도 모른다. 모두가 내 상식대로 할 것이라 의심치 않는 탓이다. 인간은 잘 아는 것처럼 굴면서 남이 귤을 위부터 까는지 아래부터 까는지도 모르고 산다. 상식이라 생각한 것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에야 깨닫는다. 2024년은 우리가 남을 얼마나 모르는지 새삼 깨달은 해였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붙이고 남을 좀 더 알자. 송년 덕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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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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