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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일본을 웃기고 울린 2024 뉴스 톱 텐 [방구석 도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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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벽두 덮친 대지진, 구호물자 실어나르다 사고 난 해상보안청기

단짝 통역사에 뒤통수 맞은 오타니, 데뷔 첫 시즌에 우승컵 딴 스모 신인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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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1월 1일 규모 7.6 대지진이 닥친 일본 이시카와현 현장. 현지 주민들이 무너진 집들을 지나 걸어가고 있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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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돌아보게 되는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크리스마스엔 어떤 소식을 전해드릴지 고민하다가, 올 한해 일본에서 있었던 굵직한 소식들을 망라해보기로 했습니다. 방구석이 맘대로 고른 올해의 일본 뉴스 톱10입니다. 이전 레터에서 다뤘던 소식도, 다루지 않았던 소식도 있습니다. 올해 일본인들은 어떤 일에 웃고 울었을까요.

2024년 방구석 도쿄통신을 읽어주신 구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구독을 연료 삼아 내년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노토반도를 덮친 악몽 같은 대지진

일본인들에게 2024년 새해 첫날은 악몽 같은 날이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연상케 하는 대지진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1일 오후 4시,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能登)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 지진.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이후로 100년 만에 일본 내륙에서 발생한 규모 7.5 이상의 대지진이었습니다. 이시카와현 곳곳에서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이 났고 도로가 갈라지는 등의 피해까지 속출했습니다. 한때 한국 동해안 일대도 쓰나미 영향권에 들면서 국내 언론들의 관련 속보가 타전되기도 했습니다.

자국을 덮친 비극에 쏜살같이 달려온 경찰, 소방, 자위대, 자원봉사 단체의 노력으로 약 1년이 지난 지금 노토반도 지진 현장은 어느 정도 수습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살 곳을 잃은 주민들은 피난처를 전전하며 고향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발생한 피난민 수만 5만여 명.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500여 명입니다.

조선일보

지난 1월 2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서 JAL(일본항공) 여객기와 충돌해 폭발한 해상보안청 항공기 잔해가 시커멓게 불탄 채 널브러져 있다. 이 사고로 JAL 여객기 탑승객 379명 전원은 탈출했으나, 해상보안청 항공기 탑승자 5명이 숨졌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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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충돌로 스러진 해상보안청 직원들

노토반도 지진과 관련해 또 다른 비극도 있었습니다. 일본 사회의 시선이 노토반도에 솔린 지난 1월 2일 저녁 6시쯤,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항공기 충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던 JAL(일본항공) 여객기가 이륙을 준비하던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부딪히는 사고였습니다.

JAL은 ‘90초 룰(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90초 안에 승객들을 기내에서 탈출시키도록 훈련받는 것)’이라 부르는 항공사 규정을 따라 379명의 탑승객을 중상자도 없이 무사히 탈출시켰습니다. 일본은 물론 미국·유럽 등 전 세계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목할 정도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여객기와 부딪힌 해상보안청 항공기엔 기적이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해상보안청 항공기는 당시 노토반도 지진 현장에 구급 물자를 보급하려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두 항공기 기장과 항공 관제사 간 소통 문제로 발생한 이 사고로 새해 벽두부터 300여㎞ 떨어진 노토반도에 피난민 생활과 생존사 수색을 위한 물자를 실어 나르려던 해상보안청 직원 5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비행기엔 담요 100장, 비상식 850인분 등이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사회는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하네다항공에선 해상보안청 해상보안본부 주최로 1월 2일 숨진 다섯 직원 다하라 노부유키(41) 부기장, 이시다 요시키(27) 통신사, 다테와키 와타루(39) 레이더사, 우노 마코토(47) 정비사, 가토 시게아키(56) 정비원에 대한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조선일보

지난 3월 20일 미국 프로야구(MLB) 공식 개막전 LA 다저스 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차전 경기에서 오타니 쇼헤이(왼쪽)와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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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단짝에 발등 찍힌 오타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 미국 무대를 제패한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30)는 11년간 동고동락한 단짝 친구이자 통역사 미즈하라 잇페이(40)와 항상 붙어다녔습니다. 둘의 인연은 2013년 오타니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했을 때부터입니다. 2018년 메이저리그 진출, 지난해 LA 다저스로의 이적에도 미즈하라가 함께 했습니다. 외신 기자들 사이에선 미즈하라에게 오타니의 ‘그림자’라는 별명까지 붙여졌을 정도입니다.

그런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발등을 찍었습니다. 지난 3월 미 스포츠 매체들에 의해, 미즈하라가 불법 도박 빚을 갚으려 오타니 계좌에서 최소 1600만달러(약 233억원) 절도한 일이 탄로 난 것입니다. 미즈하라가 도박에 손을 댄 건 2021년 9월 무렵부터로 이때부터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오타니 통장에 수차례 손을 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타니는 즉각 미즈하라를 해고했지만 그에 대한 사법 절차는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검찰에게서 은행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그는 내년 1월 24일 재판에서 형량이 선고되길 앞두고 있습니다. 한때 8만5000달러(약 1억 2400만원)의 연봉을 받았던 그가 최근 LA에서 음식 배달 일을 하고 있다는 현지 매체 보도도 있었습니다.

통역사의 도박 빚 파문이 폭로되고 나서 성적이 다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던 오타니는 금새 컨디션을 회복, 올 시즌 3할1푼의 타점과 54개의 홈런, 13개 타점 등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 MLB(미 프로야구) 만장일치 MVP를 수상했습니다. AP가 선정한 ‘올해의 남자 스포츠 선수’에도 2년 연속 올랐습니다.

◇110년만 위업 달성한 스모 선수

3월에는 스포츠 관련 소식이 많았습니다. 일본 전통 스포츠이자 한국 씨름과 비슷한 스모(相撲) 프로 리그 1부에서 올해 첫 데뷔한 20대 신인이 우승하는 이변을 이뤄냈습니다.

주인공은 25세 신인이었던 다케루후지(尊富士·본명 이시오카 미키야)였는데요. 유치원 시절 스모를 시작한 그는 스모 명문인 돗토리조호쿠고교를 거쳐 니혼대에 진학, 정식 선수론 2022년 가을 대회에서 프로 최하위 리그 격인 조노쿠치(序ノ口) 등급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조니단·산단메·주로 등 상위 리그로 연달아 승급한 뒤 올해 마쿠노우치(幕内·1부 리그)에 입성했습니다.

1부 리그에 입성해서도 연전연승의 기세를 놓지 않더니, 결국 3월 24일 오사카 부립 체육회관에서 열린 센슈라쿠(千秋樂·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였던 고노야마(豪ノ山·26)를 꺾고 최종 성적 13승 2패로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일본 스모 사상 두 번째로 신인이 1부 우승을 차지한 사례였습니다. 이전 사례는 1914년 여름 대회를 제패한 료고쿠 유지로(両國勇治郎)로, 이번이 110년 만이죠.

대회 폐막과 함께 열린 시상식에서 다케루후지는 일본스모협회가 시상하는 3대 상 ‘수훈(殊勲)·감투(敢闘)·기능(技能)상’을 싹쓸이했어요. 선수 한 명이 세 상을 동시에 받기도 24년 만이었습니다. 최근 침체기에 허덕이던 일본 스모계엔 새로운 스타 탄생이라는 호재로 중흥기를 재현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확산했습니다. 명실상부 일본 스모 스타로 떠오른 다케루후지는 다음 달 12일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지난 3월 69세 나이로 숨진 일본 만화 ‘드래곤볼' 원작자 도리야마 아키라(鳥山明)


◇드래곤볼의 ‘별’이 지다

세계 만화 팬들을 침울에 빠지게 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20세기 만화 대작(大作) ‘드래곤볼’의 원작자 도리야마 아키라(鳥山明)가 지난 3월 6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리야마는 1978년 일본 만화가 등용문이라 불리는 잡지 ‘주간 소년점프’에서 데뷔했습니다. 1984~1995년 연재한 드래곤볼이 그의 대표작이죠. 일본 만화 역사상 최초로 총 판매 부수 1억 부를 넘긴 초(超)히트작입니다. 중국 고전 소설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소원을 이뤄주는 7개의 구슬을 찾기 위해 세상을 모험하는 손오공과 동료들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선 생전 도리야마가 올 드래곤볼의 40주년을 맞아 새롭게 그린 ‘드래곤볼 다이마’가 지난달부터 방영되고 있습니다. 그의 데뷔 잡지인 주간 소년점프는 지난 3월 그의 부고를 전하며 “도리야마 선생의 만화는 국경을 넘어 세계에서 읽히고 사랑받았다. 그의 캐릭터들과 압도적 디자인 센스는 이후 많은 창작자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드래곤볼을 통해 만화 대가 반열에 오른 도리야마가 만화에 입문한 계기는 다름 아닌 ‘담배’였다고 합니다. 하루 세 갑씩 피우는 지독한 애연가였다고 하는데, 무직 생활 도중 우연히 상금 50만엔이 걸린 만화 신인상 모집 공고를 보고 응모를 결심했다죠. 담뱃값 걱정 없이 살고 싶다면서요.

조선일보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 7월 3일 도쿄 일본은행 본점에서 새로 발행한 1만엔·5000엔·1000엔권 지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새 1만엔권 지폐에는 일본 근대 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초상이 들어가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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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엔권 인물이 ‘조선 침탈 주역’?

지난 7월엔 일본의 1만·5000·1000엔 지폐가 새로운 인물과 도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일본 지폐 디자인이 개편되는 건 5000·1000엔권 인물이 바뀐 2004년 이후 20년 만이었습니다. 각국이 캐시리스(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요즘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현금은 누구라도,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이다. 앞으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새 지폐 발행 소식과 함께, 이 나라에서 5000㎞ 떨어진 히말라야 산악 국가 네팔도 함께 주목받았는데요. 일본이 지폐 원료인 나무 미쓰마타(삼지닥나무)를 네팔에서 수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팔산 미쓰마타는 일본 지폐 원료의 9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 경제를 뒷받침하는 국가는 다름 아닌 네팔”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새 최고액권 1만엔 지폐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 5000엔권엔 일본 여성 교육의 선구자라 불리는 쓰다 우메코(1864~1929), 1000엔권엔 세계 최초로 파상풍 치료제를 개발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1853~1931)의 초상이 실렸습니다. 이중 1만엔 신권의 주인공 시부사와는 생전 일본 최초의 은행 다이이치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을 비롯해 철도·에너지·증권거래소 등 500여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론 자신이 세운 기업보다 많은 600여 개의 사회 공헌 단체를 세우거나 도왔습니다. 일본인들에게 두루 존경받는 인물이죠.

동시에 그는 1902년 당시 대한제국에서 자신의 얼굴이 실린 지폐 ‘제일은행권’을 발행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1910년 경술국치의 토대를 닦았단 비판이 국내에선 제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에이이치가 한반도에서 지폐, 철도를 만든 이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전문가 사이에선 에이이치가 당시 실제로 일제의 대한제국 경제 침탈을 목표했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립니다.

조선일보

이시바 시게루 현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27일 도쿄에서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 투표에서 최종 승리한 뒤 당원들에게 인사하던 모습/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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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전 5기의 기적, 자민당 신임 총재 이시바

정치 뉴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곧 총리를 뜻하는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가 지난 9월 바뀌었는데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임기 만료로 치러진 이번 총재 선거 승자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였습니다.

이시바는 과거 아베 신조와 아소 다로 등 자민당 소속 전직 총리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이단아’입니다. 일본인들은 그를 ‘미스터 잔소리’라 부릅니다. 그 덕에 국민 지지율은 높은데, 당내 결집력이 약점입니다. 당원과 당 소속 의원 투표로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 특성상 그의 승리를 예견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 출마가 다섯 번째로 과거 이미 네 번이나 탈락한 전적도 있습니다.

그런 그가 네 번 넘어진 뒤 다섯 번째에 일어나 당선된 것입니다. 선거 막판 지지세가 상승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을 결선까지 가는 접전 끝에 꺾었습니다. NHK 등 일본 언론은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가 총재에 오르는 데 대한 당내 불안과 우려가 팽배해 이시바가 역전 승리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죠.

하지만 이듬달(지난 10월) 총리직에 앉은 이시바 총리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이지만 않습니다. 30%대의 저조한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그에게 솔직하고 직선적인 국정을 기대했는데, 막상 총리 의자에 앉으니 실리를 위해 이렇다 할 액션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시바 특유의 길고 결론 없는 화법이 비판 대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페루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이시바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타국 정상의 악수를 받고, 회의 도중 팔짱을 끼고 남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도 국민들에겐 눈엣가시입니다.

일본 정치권에선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전까지 이시바가 내각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조기 총리 교체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돌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이자 총리인 이시바 시게루(왼쪽)와 제1야당 입헌민주당 대표인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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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파워’는 없었다, 총선 참패 자민당

이시바 총리는 취임한 뒤 즉각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을 치렀습니다. 자민당은 통상 신임 총리가 나오면 ‘민심을 묻겠다’는 취지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르죠. 이시바에게도 정해진 수순이었는데, 이 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집권 연립당인 자민·공명당이 합쳐서 191석. 총 465석 중 과반에 40석 이상 못 미쳤습니다. 과반 의석 확보 실패는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입니다.

자민당의 참패 이유는 결국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조성 스캔들이었습니다.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지난 5년 동안 정치 행사를 열면서 받은 현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사건을 말합니다. 기시다 전 총리도 이 사태로 지지율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결국 차기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던 거였죠. 이시바는 비자금 파문에 연루된 의원 10여 명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는데, 유권자 표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단 분석입니다.

대신 야당의 약진이 돋보였습니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이끄는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 148석을 얻어 선거 전보다 50석이나 늘렸죠. 소수 야당이었던 국민민주당은 유세에서 전기세, 광열비 인하 등 친(親)서민 정책과 공격적인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인기를 얻더니 의석 수를 4배(7->28석) 불리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앞선 이시바의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 소식에서 전해 드렸듯, 이시바는 취임 직후부터 위기입니다. 특히 이 중의원 총선 참패가 뼈아팠습니다. 벌써 자민당에선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등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잠룡들이 꿈틀대고 있고, 입헌민주당은 범야권을 결집해 정권 교체까지 노리는 상황입니다.

조선일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 단체로 선정된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피단협)’의 미마키 도시유키 대표 위원이 최근 히로시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은 표정으로 소감을 말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피단협 도쿄지부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직원 마사코 구도씨./로이터 뉴스1·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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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피폭자 단체의 노벨평화상 수상

바람 잘 날 없던 일본 사회에도 희소식이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피폭된 시민들의 단체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 협의회(피단협, 일본어 발음 ‘히단쿄’)’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난 10월 선정됐습니다. 이들은 1956년 결성 이후 피폭 당시의 증언을 국제사회에 발신하면서 핵무기 개발 반대와 피폭자에 대한 지원을 호소해왔는데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이에 대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노력과 증언으로 핵무기가 다신 사용돼선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미마키 도시유키(82) 히단쿄 대표 위원은 노벨평화상 발표가 있고 나서 “(앞으로도) 계속 핵무기 폐기와 항구적인 평화를 세계에 호소하겠다”고 말했죠. 히단쿄엔 피폭 당시 히로시마·나가사키에 거주하던 한국인들도 회원으로 참여 중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이들 중 광복 이후 한국에 건너온 피해자들은 경남 합천에 있는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모여 삽니다.

히단쿄의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은 최근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유례 없는 ‘두 전쟁’ 사태로 핵무기 사용 공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노벨위원회나 히단쿄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핵개발을 추진해온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 등으로 핵무기의 위협이 커지는 데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됐죠. “핵무기가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는 게 노벨위원회의 설명입니다.

이시바 총리는 히단쿄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한편 미국과의 ‘핵 공유’로 일본 역시 핵무기 전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시바의 ‘신(新) 핵 안보 전략’에 대해 히단쿄 측은 “핵의 무서움을 알고 있다면 ‘생각 좀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경하게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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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의원 총선 토론회에서 다마키 유이치로 일본 국민민주당 대표가 ‘젊은이를 망치지 마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는 모습/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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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발목 잡는 ‘103만엔의 벽’ 어떻게 될까

연말 일본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고질적인 노동계 문제였던 ‘103만엔의 벽’입니다. 시간제 근로자가 근무를 늘려 연수입이 103만엔을 넘으면 소득세 납부 의무가 생겨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소득세 공제 최저 보장액이 103만엔으로 정해진 1995년부터 제기된 해묵은 문제인데, 지난 10월 중의원 총선에서 의석 수를 네 배나 불린 국민민주당이 ‘필수 해결 과제’라고 정권을 압박하면서 다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국민민주당은 지난달 국회에서 치른 총리 지명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 총재 이시바의 연임을 물밑에서 돕는 대신, 소득세가 발생하는 연소득 기준을 178만엔으로 올려 ‘103만엔의 벽’을 허물자고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이시바 연임 직후 자민당도 이에 호응하는 듯했지만,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인상안을 국민민주당이 요구한 178만엔에서 123만엔으로 대폭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민주당의 방안을 따르면 정부 세수가 7~8조엔가량 줄어든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탓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국민민주당은 특히 총선 돌풍의 주역이자 당 아이콘인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가 최근 불륜 논란으로 당직을 정지당하면서 정책 추진력이 급격히 휘청이고 있습니다. 총선 직후 일본 사회엔 다마키가 “내년 7월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 전까지 일본 정국을 움직일 인물”이라는 얘기까지 돌았는데요. 이에 자민당이 ‘다마키 파워’가 사라진 틈을 타 국민민주당이 아닌 자당이 추구하는 인상안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후문이 적잖습니다. 당직이 중단돼 내년 3월까지 의원 활동만 가능한 다마키는 먼발치에서나마 “불에 기름을 붓는 조치다. 최근 국민 생활 여건을 고려하면 (123만엔 인상안은) 매우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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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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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68~69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돈세탁·강도·살인… 끝없는 어둠 알바에 ‘위장 수사’ 칼꺼낸 日 경찰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2/11/6V26E27GWJG5JFYHEM5Y5G4EFA/

제과업계 ‘올 크리스마스 케이크 관두고 싶다’는 이유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2/18/43CW56OIYBFR5PB2UVJSKE2U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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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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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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