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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일사일언] 새해엔 뭘 바꿔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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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좋지 않은데도 안경을 쓰지 않아 오해를 받곤 했다. 멀리서 누가 알은체를 해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상대방이 기분 나빠한 적도 많다. 카페나 식당에서 벽에 붙은 메뉴판이 보이지 않아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가 화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주위에선 눈 더 나빠지기 전에 안경이나 렌즈를 끼라고 했지만, 최대한 안경을 쓰지 않고 버텼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선 안경 챙기는 일이 귀찮았고, 얼굴에 뭔가를 걸치는 게 싫었다. 가뜩이나 안 예쁜(?) 얼굴이 더 못나게 보일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가 어렵게 됐다. 난시가 너무 심해져 못 이기는 척 안경을 맞췄는데 그 뒤로 전에 없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뿌옇고 흐릿했던 세상이 마치 개안을 한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브라운관 TV를 보다 LED TV로 갈아탄 것 같았다. 얼마 전 시골집에 갔을 땐 밤하늘의 별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 별들은 그동안 내 눈에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이상 인사를 빼먹는 무례한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아 좋았고, 멀리서도 먹고 싶은 메뉴를 편안히 고를 수 있게 됐다. 인상을 쓰지 않으니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뜻밖의 칭찬을 받으니 은근히 자신감도 생기고 삶의 활력도 올라갔다.

뭣 때문에 그토록 안경을 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을까? 그저 관성이었던 것 같다. 안경 챙기기가 귀찮다는 것도, 안경 쓴 내 모습이 어색하다는 것도 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변명 아니었을까, 그 익숙함을 과감하게 버리자 삶의 질이 급상승했다.

우리는 거대한 사건이나 대단한 결심이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봐도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놀라운 성공이나 성취가 시작된 경우가 많다. 이른바 ‘미러클 모닝’의 창시자인 할 엘로드는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뒤,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그 시간에 명상, 운동, 독서, 글쓰기 등을 했는데 그때 익힌 노하우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동기부여 전문가로 거듭났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역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토요일마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르는 습관을 만들었고, 그 덕에 훗날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꼭 거창하게 변화할 필요는 없다. 작은 변화라도 훗날 눈덩이처럼 예상치 못한 큰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새해에는 안경 말고 또 어떤 변화를 시도해볼까.

[진담·‘따로 또 같이 고시원, 삽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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