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선 눈 더 나빠지기 전에 안경이나 렌즈를 끼라고 했지만, 최대한 안경을 쓰지 않고 버텼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선 안경 챙기는 일이 귀찮았고, 얼굴에 뭔가를 걸치는 게 싫었다. 가뜩이나 안 예쁜(?) 얼굴이 더 못나게 보일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가 어렵게 됐다. 난시가 너무 심해져 못 이기는 척 안경을 맞췄는데 그 뒤로 전에 없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뿌옇고 흐릿했던 세상이 마치 개안을 한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브라운관 TV를 보다 LED TV로 갈아탄 것 같았다. 얼마 전 시골집에 갔을 땐 밤하늘의 별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 별들은 그동안 내 눈에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이상 인사를 빼먹는 무례한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아 좋았고, 멀리서도 먹고 싶은 메뉴를 편안히 고를 수 있게 됐다. 인상을 쓰지 않으니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뜻밖의 칭찬을 받으니 은근히 자신감도 생기고 삶의 활력도 올라갔다.
뭣 때문에 그토록 안경을 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을까? 그저 관성이었던 것 같다. 안경 챙기기가 귀찮다는 것도, 안경 쓴 내 모습이 어색하다는 것도 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변명 아니었을까, 그 익숙함을 과감하게 버리자 삶의 질이 급상승했다.
우리는 거대한 사건이나 대단한 결심이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봐도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놀라운 성공이나 성취가 시작된 경우가 많다. 이른바 ‘미러클 모닝’의 창시자인 할 엘로드는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뒤,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기 위해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그 시간에 명상, 운동, 독서, 글쓰기 등을 했는데 그때 익힌 노하우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동기부여 전문가로 거듭났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역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토요일마다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르는 습관을 만들었고, 그 덕에 훗날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꼭 거창하게 변화할 필요는 없다. 작은 변화라도 훗날 눈덩이처럼 예상치 못한 큰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새해에는 안경 말고 또 어떤 변화를 시도해볼까.
[진담·‘따로 또 같이 고시원, 삽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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