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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심장이 안 돌아와요”…생존확률 단 1%, 낙뢰 맞고 살아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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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고등학교 국어 교사 김관행(오른쪽)씨와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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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뢰를 맞고 1% 확률로 생존한 20대 교사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연이 소개됐다.

지난 25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는 낙뢰를 맞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고등학교 국어 교사 김관행(29)씨와 기적을 만든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출연했다.

광주서석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김씨는 지난 8월5일 광주·전남지역에서 3000번에 가까운 낙뢰가 관측된 날, 광주의 한 대학교에서 연수를 받고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쓰러졌다.

창문을 닫으려던 사범대 조교들이 김씨를 1~2분 만에 발견해 119에 신고한 후 돌아가며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김씨는 7분 만에 출동한 119에 실려 2~3분 거리의 조선대병원으로 실려갔다.

병원에서 심정지 치료를 받은 끝에 심장은 다시 뛰었지만 이미 40분이 지난 뒤였다. 일반적으로 심장이 멎은 후 5분이 지나면 혈액과 산소가 공급 안돼 심장과 폐는 물론 뇌까지 문제가 생길 확률이 크다.

의사인 김씨 아버지도 연락을 받고 급히 서울에서 광주로 이동했다. 함께 촬영장에 나온 김씨 아버지는 “12시에 낙뢰를 맞은 것 같고 연락받은 게 12시20분쯤이었다. 심폐소생술을 20분 넘게 하는데 심장이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언제쯤 올 수 있겠냐더라”며 “가족이 다 서울에 있는데 당장 내려갈 테니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광주로 가는 SRT를 탄 김씨 아버지는 10분쯤 지나 “심장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한시름 놓고 응급실에 들어간 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채 몸에 기계를 달고 있는 아들을 마주했다.

김씨 아버지는 “기관지 내 삽관 하고 의식 없고 몸에 기계를 다 걸어놨더라. 폐에 물이 많이 차서 산소 공급이 안 된다더라. 그 상태에서 버티면 사는 거고, 못 버티면 죽는 거라더라”며 “시간 지날수록 눈 앞에서 죽어가는 게 보였다”고 했다.

상태가 악화된 김씨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응급실에서도 에크모(ECMO·인공심폐기계) 치료가 가능한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조용수 교수는 “치료가 어려운 상황에서 치료해보겠다고 (환자를) 받았는데 상태가 몹시 안 좋더라. 자신있게 덤볐는데 10분 만에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에크모 치료를 했다”며 “거의 죽기 직전 상태가 아니면 잘 안 쓰는 기계”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40분 넘게 해서 심장이 멎은 시간이 너무 길었고 의식도 전혀 없었다. 혈압 올리는 약을 최대한 농도로 다 썼음에도 혈압이 정상인의 절반도 유지가 안됐고 인공호흡기를 썼는데도 저산소증이 심해 1~2시간 이내 사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좌절감을 느꼈다는 조 교수는 김씨 가족들에게 미안해 피해다닐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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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국어 교사 김관행(오른쪽)씨와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전남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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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틀째 김씨의 상태는 호전됐다. 의학적으로 낙뢰를 맞은 경우 사망률은 99%, 생존 확률은 단 1%였다.

조 교수는 “사실 (생존률) 1%라고 말하는데 (김씨의 경우) 그것보다 낮았다. 낙뢰 맞고 심장이 멎은 사람은 30분 이상 심폐소생술을 안 하고 사망선고를 내린다”며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환자) 혼자 이겨낸 거다. 하늘이 도왔고 본인의 의지가 강해서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환자보다 먼저 의사가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던 김씨는 입원 10일 만에 인공호흡기까지 떼고 회복했다.

김씨는 전남대병원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응급의학과에 기존에도 애정이 있었다. 아버지 친구분이신, 지금은 돌아가신 윤학덕 선생님이 계셔서 전국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이 잘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어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 복권을 사라는 권유를 자주 받는다는 그는 “이것 자체가 로또 같다. 이미 (운을) 쓴 것 같아 안 사고 있다”며 “제일 재수없는 사람 중 재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발견, 이송 다 운이 좋았다. 나중에 다 찾아뵀다. 트라우마로 남을 장면을 보여드렸는데 이겨내고 살려주셔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자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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