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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삼현주의 쇠락을 본다 [전문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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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3년 11월13일 오전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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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울산공장은 태화강을 가로질러 1~5공장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1968년에 생산을 시작한 울산공장의 부지 면적은 150만평이고, 3만5천명의 노동자가 근무한다. 울산공장은 9.6초에 1대씩, 하루로 치면 6천대 꼴, 1년이면 차량 150만대를 만들 수 있다. 1공장은 코나와 아이오닉5을, 2공장은 제네시스 스포츠실용차(SUV) GV 시리즈와 팰리세이드·산타페를, 5공장은 GV 대형 시리즈를 생산한다. 공장별 차종 배치는 생산전략과 노사교섭에 따라 정해지나, 공장이 소화할 수 있는 생산량과 내부 설비 규격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일정한 순서를 따른다.







주행시험장에 들어서는 전기차 전용라인





2공장과 5공장 근처엔 넓은 부지가 있다. 주행시험장으로 쓰던 곳인데 2022년 울산시와 현대차 간 양해각서가 체결돼 2023년부터 공장 구축이 시작됐다. 2025년 전기차 전용라인으로 완공할 예정이다. 아이오닉, 제네시스나 넥소 등 전기차(배터리·하이브리드·수소)가 울산의 전기차 전용라인에 배치될 예정이다. 전기차 전용라인을 어느 지역에 설치하느냐는 노사관계의 중요한 쟁점이며, 현대차 공장이 있는 울산시 역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개입한 쟁점이었다. 이는 ‘트럼프 2.0’를 필두로 전세계적인 생산의 지형이 재편되고 있음에도, 장기적으로 전기차가 미래 먹거리임은 변함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웅변한다.



현대차는 2023년 생산직 공개채용을 재개했다. 약 10년간 현대차는 생산직 공채를 하지 않았고, 생산직 정규직 채용은 법원에 의한 사내하청 전환에 한정됐다. 2023년 연봉 1억원을 주는 이른바 ‘킹산직’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400명을 채용하는데 전국에서 몰린 지원자로 3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2024년부터 단체협상을 통해 매해 700명가량 채용하기로 정했다. 노조가 정년연장 시도만 하다가 신규채용을 획득한 것은 좀 더 유익한 결과다. 현대차 생산직은 매해 천 명 이상 정년퇴직하고 있어서 신규 고용규모는 퇴직인원 대비 20~40% 수준에 이른다.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라인 설치와 생산직 공채 재개가 ‘산업수도 울산’ 관점에서 기쁘기만 한 일일까? 전기차 전용라인의 위치가 기존 주행시험장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보자. 주행시험장이 있다는 말은 울산에서 자동차 신차 연구개발(R&D) 기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주행시험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울산이 연구개발 단계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생산기지’ 기능은 한 단계 앞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자동차 산업 연구자들은 자동차 브랜드를 평가할 때 ‘모공장’(Mother factory)의 역할에 주목한다. 전세계 시장에 세워진 공장들의 혁신을 주도하는 게 바로 모공장의 역할이다. 모공장이 자동차 브랜드의 전반적인 성능과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산공법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울산에 ‘최신식 공장’이 설치되는 일을 반기기엔 사태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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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공장 울산공장의 위상 변화





현대차의 혁신 방식은 역사적 모공장인 울산공장을 벗어나고 있다. 1975년 고유모델로 출시된 포니(Pony)는 울산공장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와 생산직 노동자 간 협업의 산물이었다. 포니 개발에 참여했던 엔지니어 강명한은 엔지니어는 현장에 기반을 두고 개발하고, 다시 그것을 기반으로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기술혁신을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당시엔 삼현주의(‘현장’에서 ‘현물’을 보고 ‘현실’을 인식해 문제를 해결한다)의 기풍이 강했다. 삼현주의의 구현을 위해선 현장을 중시하는 엔지니어와, 엔지니어와 협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생산직 노동자가 필수적이다. 엔지니어들이 고객의 불만사항으로 드러나는 품질과 성능 개선을 위한 과제를 수행할 때도 울산공장의 노련한 노동자들과 협업하는 게 당연했다. 울산공장은 ‘실행을 통한 학습’의 최전선에 놓은 모공장이었다.



이러한 기풍은 19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와해돼 왔다. 1984년 개발도상국 최초의 자체 개발 자동차 엔진이었던 알파엔진은 경기도 용인군 마북리 연구소의 작품이었다. ‘현대자동차 25년사’는 처음에는 서울 개발팀과 강명한의 울산 개발팀이 엔진 개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고 전한다. 진도는 서울팀이 빨랐다. 현대차는 국내외에서 과학기술인력을 100명 이상 충원하면서 그 해 11월 마북리 연구소에 엔진 개발을 맡겼다. 결국 마북리 연구소는 1991년 엔진을 개발했고, 울산 연구소의 기능은 점차 축소된다. 현대차는 1996년 모든 현대차 연구소를 통합해 경기도 화성에 남양연구소를 연다.



2000년대를 지나면 울산대 조형제 교수가 ‘기민한 생산방식’이라 정의하는, 생산직 교육훈련을 축소하고, 노동자의 숙련에 기대기보다 자동화와 모듈화, 정보통신기술(ICT) 결합을 통한 엔지니어 주도의 혁신 방향으로 선회한다.



생산혁신 관점에서도 현대차 모공장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첫째는 1996년 아산공장 설립이다. 아산공장은 당시 쏘나타와 그랜저 등 판매량이 많고 미래에 유망한 차종을 생산하면서, 아이티(IT) 기술을 활용한 생산운영과 다양한 차종을 한 라인에서 생산하는 혼류생산 등 유연성과 자동화를 극대화하는 실험적인 공장이었다. 다양한 차종을 쉽고 빠르고 균질한 품질로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노사관계에 대한 회사 쪽의 불만은 모공장이 아닌 선도공장을 따로 지어 혁신을 이끄는 방향을 채택한다.



둘째, 2002년 남양연구소의 파이롯트센터 개소다. 연구개발된 차량을 공장에서 양산하기 위해서는 공장의 여건에 맞춰 설비를 준비하고, 조립 공법 등을 조율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양산 이전 종합적인 품질을 확인하고 생산 매뉴얼을 확립하는 파일럿 생산은 공장에서 수행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현장의 노동자 대신 연구소의 엔지니어 인력과 함께 연구소에 설치된 양산라인으로 파일럿 생산을 수행한다. 울산공장은 연구소에서 주는 물량을 소화해 내는 역할에 머물렀다. 울산에 있던 주행시험장의 존재는 연구개발 단계에서 일정 역할을 담당한다는 의미를 가졌으나, 이 자리에 공장을 지으면서 울산은 ‘최종 조립’만 하는 역할로 제한돼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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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정의선 회장이 기념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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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으로 발길 옮기는 엔지니어





엔지니어들도 울산공장을 떠나고 있다. 생산직의 역할이 줄어드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3월, 향후 3년간 8만명을 신규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가운데 6만7천명이 대졸 이상 일자리다. 그 대졸 일자리는 수도권에 집중된다. 생산기술 설계 역시 남양연구소가 주도하므로 공장의 엔지니어 수요가 줄 수밖에 없다.



현대차에 소재·부품·장비를 납품하는 기업들도 수도권에 연구소를 짓거나, 원청과 협업하기 위한 사무소를 짓는다.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신규로 납품을 희망하는 기업들은 수도권 입지 기업들이 많다. 기술혁신이 이뤄지는 곳과 고부가가치 제품이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래 먹거리 전환 속에서 부·울·경 지역 공과대학을 졸업한 청년들마저 선호하는 자동차 업계 일자리를 구하려면 수도권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조 스타트업을 창업하려 해도 수도권 창업이 유리할 수 있다. 산업 생태계 관점에서 볼 때 지리적 불균형이 심화되는 셈이다. 현대차와 오랜 거래관계를 갖고 부·울·경과 대구경북 지역에 입지해 있던 기업들 역시도 ‘우수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 또 좀 더 긴밀한 원청과의 연구개발 협업을 위해 수도권행을 선택하기 쉬워진다.



지역혁신 체제 관점에서 기존의 공장들이 혁신역량을 보유하고 지역에 연구소가 제 역할을 한다는 전제에서, 산학연 활동이든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창업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 제조 대기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확실한 ‘해자’가 지역 사업장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선택은 자유롭고 지역에 대한 고려 자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가 세계 3위를 하다가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2위를 하고, 또 도요타를 제치고 1위가 되더라도 그 효과가 국민경제 전체 관점에서는 클지 몰라도, 현대차 모공장이 위치한 울산과 지역의 청년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독자들에게 경제를 살펴보기 위한 지도책을 제안한다. 인구학적 전환, 공간분업의 전개, 탈추격기의 제조업 혁신이라는 3가지 난관을 함께 아우르는 지도책을 통해 단순히 신문에 나오는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문제가 아닌, 우리의 삶과 연관된 문제로서 제조업의 현주소를 함께 살펴볼 수 있길 기대한다. 문화인류학과 과학기술학을 차례로 전공한 양승훈 교수는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했고, 현재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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