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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혼다의 ‘닛산 일병 구하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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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치다 마코토 닛산자동차 사장과 미베 도시히로 혼다 최고경영자가 23일 일본 도쿄에서 합병 협상과 관련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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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동차 업계가 지각변동의 기로에 섰다. 부동의 선두인 도요타를 추격하던 혼다와 닛산이 합병 추진을 공식화함에 따라 수십년간 이어진 3강 구도가 2강 체제로 재편될 조짐이다. 시장에서는 합병 효과를 둘러싸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급격한 실적 악화로 파산 위기설까지 제기된 닛산이 혼다라는 ‘구원 투수’를 만나 급한 불은 끄겠지만, 합병의 장기 성패는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일본 도쿄 증시에서 닛산자동차는 전일 종가 대비 6% 오른 477엔에 거래를 마쳤다. 혼다와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는 최초 보도가 있던 지난 18일 하루 만에 23.7% 급등한 이후 이어진 오름세가 23일 합병 추진 공식화로 다시 탄력받는 모습이다. 반면, 혼다 주가는 보도 후 이틀 동안 4.9% 하락하다가 23일 합병 추진과 함께 발표된 약 1조1천억엔(10조1621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에 힘입어 이날 12.2% 올랐다. 시장이 두 회사 간 합병을 혼다에겐 다소간의 악재로, 닛산에게는 호재로 인식한 것이다.



이번 합병은 혼다의 닛산 인수에 가깝다. 형식적으로는 두 회사를 완전자회사로 두게 되는 신설 지주회사의 이사회 과반을 혼다가 임명한다. 합병 회사의 대표이사를 혼다가 지정하는 셈이다. 자금력과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도 혼다가 닛산을 책임지는 구조다. 혼다는 9월 말 기준 4조6223억엔(42조7835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부채비율은 131%에 불과하다. 반면, 닛산이 보유한 현금은 1조5200억엔이다. 7∼9월에만 영업활동 등에 6062억엔을 순지출한데 비춰보면 넉넉하지 않은 수준이다.



닛산은 이번 회계연도 들어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다. 상반기(4월∼9월) 영업이익은 329억엔으로 전년 동기(3367억엔) 대비 90% 급감했고,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5.6%에서 0.5%로 쪼그라들었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선 41억3천만엔의 영업적자를 냈고, 당기순손실 748억엔을 기록했다.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 현지 업체들에 밀려 판매량이 5.4% 줄었고, 최대 시장인 미국에선 무리하게 가격 할인(인센티브 지급)에 나선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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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은 지난 1999년에도 파산 위기에 몰린 바 있다. 레저용차량(RV)의 인기에 제때 올라타지 못한 데다가 과도한 차입에 의존해 위기를 자초했다. 프랑스 자동차업체 르노에 인수되며 위기를 벗어났지만, 20여년이 지나 다시 외부 힘을 빌려서 위기를 모면하는 신세가 됐다. 시장의 변화를 놓쳤고, 방만한 비용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패착을 반복한 결과다.



위기의 핵심은 결국 상품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닛산 라인업에는 하이브리드차가 없다. 순수전기차 모델도 리프와 아리야 2종 뿐이다. 중국을 필두로 글로벌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과도기를 버틸 하이브리드 제품도,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전기차 기술력도 부족한 것이다.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순수전기차 양산 모델 리프를 내놨음에도 시장을 선도하는데 실패했다.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기술은 중국 업체들과 견줘서도 떨어진다는 평가다. ‘가성비’ 좋은 경차 중심의 일본 내수 시장이 첨단 기술에 과감히 투자할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 결과다. 닛산이 기업 회생을 위한 고육책으로 9천명 규모의 인력 감축과 생산 능력 20% 축소 등을 추진한다지만, 비용 절감 노력만으로 전기차와 소프트웨어중심차(SDV) 중심으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반등이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혼다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전기차나 자율주행 기술력에서 뒤처지고, 당장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수익성이 악화하는 사정은 매한가지다. 합병 시너지를 둘러싸고 의구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혼다, 닛산 모두 전기차, 자율주행차 기술에서 열위를 보여 시너지 효과가 불투명하다”며 “혼다의 자동차 부문 하이브리드 기술은 뛰어나지만 대형 차급 등으로의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과거 닛산 회장으로 닛산의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카를로스 곤은 20일 블룸버그티브이(TV)와 인터뷰에서 “두 회사는 같은 분야에서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어 비즈니스상 보완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합병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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