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SK하이닉스 이천사업장을 방문, 반도체 생산라인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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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인공지능(AI) 기본법 등 민생·경제 법안 110여 건을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반도체 특별법은 빠졌다. 반도체 업종의 연구개발 인력을 ‘주52 시간 근로제’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에 대해 민주당이 노동계 반발을 이유로 끝내 반대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천문학적 현금까지 지원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총력전인데 한국 국회는 경쟁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주 52시간제’ 족쇄마저 풀어주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은 특정 업종에만 예외 조항을 만드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특정 업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핵심 전략 산업’이다. 반도체 업황이 경제 전체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군사와 지정학적 가치까지 좌우하는 것이 반도체다. 초격차를 자랑하던 삼성전자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는 등 이미 위기 신호는 켜졌다. 반도체 산업마저 경쟁력을 잃으면 한국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근로자 보호를 위해 근로 시간 상한선을 두되,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선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세계 표준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연구센터는 위기 시 하루 24시간, 주 7일간 가동했었다. 엔비디아·마이크론 등도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며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건다. 한국처럼 경직적인 주 52시간 규제에 발목 잡혀 저녁이면 연구소 불을 꺼야 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법안 심리를 앞두고 삼성전자 임원들이 국회의원 사무실을 돌며 주 52시간 예외가 ‘3년 한시’ 조건이어도 좋으니 제발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읍소했다고 한다. 오죽 급했으면 그랬겠나.
여야 충돌로 정치 리스크가 고조되자 환율이 연일 급등하는 등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국가 신인도를 유지하고 경제 주체의 심리적 안정을 해치지 않으려면 정치권이 경제와 민생은 차질 없이 챙기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반도체 특별법 합의 처리는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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