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집회 뒤덮은 K팝 문화, 2030 여성들 대거 합류한 때문
내 아티스트 위한 ‘여론몰이’ 익숙한 팬덤… 버튼 눌려 거리로
응원봉은 곧 정체성… 이제 혼란 대신 ‘바른 정치’에 에너지를
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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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은 그야말로 ‘응원봉의 달’이었다. 비상계엄 선언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여의도 집회에서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빛났다. 대부분 참가자 중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여성들이 들고 온 것이었다. 현장에는 비장한 ‘민중가요’보다 다양한 시기에 발매된 K팝 곡들이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러자 K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다음에는 급하게 아무 응원봉이나 장만해서 참여해야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사실 늦어도 2010년대 후반부터 K팝은 언제나 집회 시위 현장에서 함께 해왔다. 이미 오래된 민중가요와 최신 K팝이 원래부터 공존하고 있던 차에, 국민적 관심을 끈 탄핵 집회가 시작되자 K팝이 더 익숙한 젊은 여성들이 대거 합류하며 ‘판’이 바뀐 것이다. 대체 어떻게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아이돌 문화가 가장 정치적인 집회와 시위로 이어지게 된 것일까?
일단 K팝이 그 자체로 지니고 있는 정치적 성격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K팝 팬들이 시민 연대 의식이 높다는 해석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는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투쟁과 동원에 있다. 그리고 이는 K팝도 마찬가지다.
모든 K팝 팬덤은 각자가 ‘팬질’하는 아이돌 그룹이 상대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끝없이 증명받으려 투쟁한다. 각 팬덤은 앨범 판매량, 음원 차트 순위, 해외 시장에서 받는 인정, 연말 시상식 참여 여부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표를 활용하여 어떤 아티스트가 더 높은 성과를 거뒀는지에 관해 논쟁을 벌인다. ‘내 그룹’에 호재가 터졌으면 선전해야 하고, ‘경쟁 그룹’에 악재가 발견되었으면 집요하게 공격해야 한다. 게다가 이 팬덤 정체성은 개별 그룹에서 시작하여 역사와 전통을 지니는 소속사 단위의 충성으로 발전하고는 한다. 각 정당이 격렬하게 싸우는 정치와 다를 바가 없다.
동원은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각 아이돌 그룹은 콘서트, 음악 방송 응원, 팬 사인회 등으로 짜인 일련의 행사 시간표가 있다. 이 행사들은 온라인상으로만 교류하던 동료 팬들을 만나 연대감을 다지고, 아티스트가 펼치는 퍼포먼스를 보며 감동을 느끼고, 집단의식을 고양하는 의식이다. 팬덤 정체성을 공유하는 소규모의 친목 그룹을 통해 수행되는 팬덤 활동은 중앙 조직의 통제 없이도 자발적으로 팬들을 나오게 한다. 팬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디자인과 색깔을 지닌 응원봉은 수천 명이 모인 콘서트장에서 한꺼번에 켜질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물건이다. 응원봉을 매개로 각각의 팬은 거대한 팬덤 공동체에 녹아들고, 콘서트 이후에 더욱 충성스러운 팬덤 활동에 나서게 된다.
이런 일상화된 투쟁과 동원을 통해 단련된 K팝 팬덤이, 적절한 스위치가 눌러졌을 때 거리의 정치로도 쏟아져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정치의 K팝화는 단순히 현재의 정치적 혼란 국면에서 그치지 않고 당분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K팝에서 투쟁은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목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 양식을 정치 영역에 적용한다면, 응원봉을 든 시위대가 급진적 참여 정치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발전으로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계속해서 더 파격적인 콘셉트를 요구하며 영구적인 투쟁에 몰입하는 팬덤 문화는 K팝에 무한 경쟁을 불어넣었고, 그 결과 K팝은 글로벌한 보편성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는 미묘하다. 이념적 급진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투쟁과 동원의 정치가 일상화되면 사회의 또 다른 필수적인 기둥인 안정이 무너질 수 있다. 여의도에 등장한 응원봉은 집회 현장을 ‘더 젊어 보이게’ 해주는 보조 조명이 아니다. 대신 응원봉의 급진성과 투쟁성을, 파괴와 혼란의 원천 대신 정치 혁신의 에너지로 전환해야만 한다는 경고등에 가까운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응원봉을 들기 전에 이 응원봉이 대체 왜 등장했는지, 그 의미를 더 무겁게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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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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