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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가족 시신 바다로 던질 수밖에…참혹했던 그날, 30만명 삼킨 대지진[뉴스속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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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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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6일(현지시간) 남아시아 대지진이 강타한지 하루가 지난 27일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 지방의 모습./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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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됐다."

2004년 12월25일(이하 현지시간). 오후만 되면 늘 해변 근처에 머물던 물소, 염소, 소들이 갑자기 산으로 향했다. 이날은 새들도 이상하게 시끄러웠다. 이 모습을 본 인도네시아인 에미아민(당시 70세)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직감을 믿은 그는 지체 없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들이 향했던 산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음 날인 12월26일 오전 7시59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 해저 40㎞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9.3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1960년 칠레 지진이 기록한 규모 9.5에 이어 두 번째로 강력한 지진이었다.


자전축·자전주기 바뀌었다…지구 뒤흔든 초강력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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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26일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아체 도심이 폐허로 변한 가운데, 2005년 1월11일 한 여성이 망연자실해 있는 모습./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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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환태평양지진대 중 1000㎞에 걸친 안다만 단층선에 균열이 생겨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하면서 일어났다.

남아시아 대지진은 그야말로 지구 전체를 뒤흔든 대지진이었다. 판 전체가 움직이면서 태국 푸켓은 32㎝, 방콕은 9㎝씩 남서쪽으로 이동했다. 지구 자전축은 2.5㎝까지 움직였고, 이에 따라 자전 주기가 2.68㎲(마이크로초·10만분의 2.86초) 짧아졌다.

초강력 해저 지진이 일어나 지층이 바다 밑바닥에서 최대 15m까지 상승했고, 이 여파로 바닷물이 통째로 일렁이면서 '쓰나미'라 불리는 초대형 지진해일로 발전했다.

남아시아 대지진은 지진보다는 해일에 따른 피해가 컸다. 초강력 파도를 동반한 지진해일은 남아시아 해안으로 빠르게 뻗어나갔다.

지진으로 발생한 물결파의 최대 시속은 일반 여객기 속도와 맞먹을 정도인 900㎞에 달했고, 진앙에서 멀지 않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주(州) 해안을 15분 만에 덮쳤다. 아파트 20층 높이와 맞먹는 최대 50.9m 높이의 파도가 몰려왔고, 인도네시아에서만 약 1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진해일은 인도양 연안 12개국을 강타했다. 바닷물이 범람, 급류에 집과 차가 떠내려갔고, 수많은 사람이 익사했다.

지진의 영향은 진앙에서 약 160㎞ 떨어진 태국의 세계적인 휴양지 푸켓과 말레이시아, 약 1000㎞ 떨어진 싱가포르, 2000㎞ 떨어진 태국 방콕과 미얀마, 방글라데시를 거쳐 수천 ㎞ 거리의 인도 동부, 스리랑카 해안까지 미쳤다. 몰디브는 수도 말레의 3분의 2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지진해일은 7시간 넘게 인도양을 가로질러 아프리카 동부까지 도달해 피해를 입혔다.


인명 피해만 30만명 이상…아프리카까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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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15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서쪽 메울라보흐의 풍경. 2004년 12월26일 남아시아 대지진 이후 파괴된 주택과 어선의 모습이 담겼다./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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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무너진 건물 잔해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여진으로 24∼48시간 안에 또 다른 해일이 덮칠지 모른다는 경보가 내려져 현장 수습은 쉽지 않았다.

부패에 따른 오염을 막지 못하면 전염병이 크게 번져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기에 피해 주민들은 가족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땅속에 파묻거나 바닷속으로 던져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 지진해일로 총 30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다. 인도네시아에서만 2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스리랑카, 인도, 태국 등에도 많은 인명 피해를 입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재난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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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6일 남아시아 대지진의 영향으로 태국 남부 휴양지 피피섬의 건물이 파괴된 모습.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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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휴양지인 푸켓과 몰디브 등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이 많았기에 한국인 18명을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지진해일이 진원지에서 7000㎞ 이상 떨어진 아프리카 동부 해안 지역까지 덮치면서 탄자니아, 케냐 등지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소말리아에서는 100여명의 어부가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고, 수해로 3만여 명이 살 곳을 잃기도 했다. 오만, 예멘 등 중동 국가들도 해안지대 가옥들이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21세기 최악의 재난…인명 피해 극심했던 이유는

인명 피해가 심했던 건 지질 해일 조기 경보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평양 연안 국가는 1960년 칠레 대지진 이후 지진해일 경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남아시아 지역은 1883년 발생한 지진 해일을 끝으로 지난 100여년간 지진해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해당 국가들이 지진해일 조기경보 체제를 구축할리 없었다. 지진 해일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남아시아 지진 당시 해안에 있던 사람들은 미리 대피하지 못했고 속수무책으로 지진해일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지진해일은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느려지는 대신, 파도는 훨씬 강도가 높아져 사람들이 보고 피하려 할 때는 이미 늦다.

지질학자들은 예보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참혹한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진은 예보가 어렵지만, 지진으로 발생하는 해일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하와이의 태평양 지진해일 경보센터가 남아시아 지진 발생 15분 만에 인도양 연안 국가들에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해당 국가들이 자국민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으면서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메시지가 전달됐을 시점 이미 피해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인도와 스리랑카는 대비할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후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2005년 세계 28개국은 향후 유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4억 달러(한화 약 5800억원)를 투입, 2006년까지 인도양 지역에 지진해일 조기 경보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으며, 2011년 운영을 시작했다.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3개국이 지역 경보센터 역할을 수행하며, 지진 감지 후 10분 이내에 경보 발령이 가능하다.

이은 기자 iame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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