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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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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6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9차 국가관광전략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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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제 | 논설위원



크리스마스 선물은 배송되지 않았다. ‘내란 수괴’는 관저에 틀어박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2차 출석 요구도 거부했다. 여전히 폭음과 격노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란 방조범’ 혐의를 받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마저 거부하고 있다. 시간을 질질 끌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무산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는 국민의 기대는 또 물거품이 됐다. 탄핵을 촉구하며 국회 앞을 메웠던 인파 속에는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방구석 게임 매니아 연합’ 등 재치 넘치는 작명을 새긴 깃발을 든 이들도 많았다. 하루빨리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자신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평범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유머로 표출했다. 그런 의지가 모여 대통령 권한을 정지시켰으니, 이젠 시스템이 다시 작동되고 신속히 수사와 탄핵심판도 진행되겠거니 했다. 온 국민이 계엄 전 과정을 두 눈으로 봤다. 우리 공동체가 이 정도로 명백한 위협조차 제때 제대로 제거하지 못할 거라고 의심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뿔싸! 그들을 너무 띄엄띄엄 봤다. 내란 주범들은 일제히 버티기에 들어갔고, 방조 세력 또한 공공연히 내란 수괴 생명 연장 프로젝트 가동에 나섰다. 내란 수괴가 살아야 자신의 죄상도 감춰진다는 계산이다. 내란 방조 세력 상당수가 이미 단순한 이익공동체를 넘어 범죄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의 선의는 또 철저히 배신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의 소환장,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청구 접수 통지서 수령조차 거부했다. 수사보다 탄핵심판이 우선이라더니, 정작 관련 서류는 제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구질구질하기가 잡범만도 못하다. 4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를 내세워 “윤 대통령은 체포하라거나 끌어내라 같은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했다”는 주장도 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군 지휘관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는데, 버젓이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최근 검찰이 입수한 명태균씨의 녹음 파일에는 윤 대통령이 ‘김영선 공천’과 관련해 “내가 윤상현한테 한번 더 이야기할게.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말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지난달 7일 기자회견에선 “저는 당시 공관위원장이 정진석 비서실장인 줄 알았다”고 했다. 국민 앞에서 대놓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양심이 마비됐거나, 거짓과 사실을 구분할 수 없는 말기적 망상에 빠졌거나다. 이런 사람이 하루라도 더 대통령으로 머문다는 생각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국민이 적잖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탄핵심판 지연 술책에 합이 척척 맞는다. 국민의힘이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불가하다고 하자, 한 대행은 기다렸다는 듯 “여야가 합의하라”며 임명을 거부했다. 이미 여야가 3명 충원에 합의해 청문회까지 마친 마당에 뭘 더 합의하라는 건가. 헌재도, 대법원도 ‘임명하는 게 맞다’는 사안이다. 지금의 헌재 6인 체제는 근원적 불안정성을 갖는다. 1명만 딴생각을 하거나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심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를 해소하고 헌정의 예측 가능성을 되살려야 할 사람이 정반대로 엇나가고 있다.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윤 대통령이 임명한 강성보수 성향 재판관이 심리를 계속 끌다가, 내년 4월18일 두명의 재판관이 퇴임하면 저절로 정족수 부족으로 탄핵심리가 중단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행의 몽니가 판을 깔아주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상급심 선고가 나오면 반전도 노려볼 수 있다는 셈법일 것이다. 나라와 국민이 어떻게 되든, 알량한 권력을 손에 쥐고 내란 방조 처벌을 피해보려는 노욕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시나리오다.



중국 작가 루쉰은 ‘사람을 무는 개는 물에 빠졌다고 건져주지 말고 버릇을 고칠 때까지 계속 패야 한다’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지금 한 대행이 준동하는 모습이 물에서 건져준 사람에게 으르렁대는 개와 다르지 않다. 소환에 불응하는 윤 대통령에 대해 즉시 체포에 나서기는커녕,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며 꼬리를 내리는 공수처의 행태도 석연치 않다. 또다시 국민에게 이빨을 드러낼 시간을 벌어주려는 것인가. 지금 당장 수괴는 잡아가둬 기를 꺾고, 방조범도 탄핵이란 몽둥이를 아낄 이유가 없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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