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8 (토)

풀무질은 계속된다 [전범선의 풀무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12·3 내란사태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재적 의원 300명 중 204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을씨년스럽다. 내년이 을사년이다. 을사조약 120주년이다. 육십갑자가 두번 돌았다. 1905년에는 조선이 주권을 빼앗겼다. 1965년에는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맺어졌다. 2025년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이미 12월3일부로 사실상 나라가 무너진 상태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서로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아나키’다.



미국에서는 뉴저지 상공에서 정체불명의 드론이 한달 넘게 대거 출몰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드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안보 위협은 아니라고 잡아뗀다.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안전하다고 확신하는가? 미국 국민의 불안과 불신이 끓어오른다.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하면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한반도와 세계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우크라이나에서는 북한군이 러시아군의 총알받이로 쓰이고 있다. 예상치 못한 드론 공격에 겁에 질려 도망가는 병사들을 봤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는가? 위헌적인 계엄령에 동원되어 내란에 동조하게 된 대한민국 군인들. 그들은 또 무슨 잘못인가? 남북한 정부가 이토록 닮았다니 이것이 민족 동질성 회복인가? 통수권자가 사익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 노상원 수첩에서 나온 ‘사살’이라는 말에 간담이 서늘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차다.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함을 느낀다. 우리가 12월3일 겪은 일을 미국은 2021년 1월6일에 이미 겪었다. 당시 대통령 트럼프는 자신이 패배한 대선 결과를 믿지 않았다. 바이든이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국회의사당을 공격하도록 민병대를 선동했다. 경찰을 포함하여 다섯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쳤다. 매우 폭력적인 유혈사태였다. 이후 미 하원은 트럼프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지만 상원에서 부결되었다.



윤석열은 민병대를 선동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계엄령을 발동했다. 트럼프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국회를 점거하려는 목적이었다.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은 대낮에 일어났지만 한국은 한밤중에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은 신속하게 비폭력적으로 막아냈다. 나는 점점 드러나는 윤석열 내란의 전모를 보며 아찔한 만큼, 그것을 이겨낸 ‘국민의 힘’에 놀랍다. 내란에 동조한 정당 이름 말고, 진짜 국민의 힘 말이다.



그 힘의 비결은 두가지다. 첫째는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우리는 동학과 3·1운동, 4·19와 5·18, 6월항쟁과 촛불로 이어지는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의 역사가 있다. 이제는 촛불에서 응원봉으로 진화했다. 엠제트 세대는 민주화 세대가 아니다. 민주(MZ) 세대다. 이미 자유롭고 민주적인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다. 주권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한다. 이번 계엄의 실패는 계엄군이 사실상 항명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민주 세대다. 상관의 부조리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둘째는 발달된 디지털 문화다. 나는 윤석열 계엄 선포 직후 이재명의 라이브 방송을 보고 여의도로 달려갔다. 한겨레신문을 사랑하지만 다음날 아침 호외를 보고 헛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계엄을 막은 것은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다. 뉴미디어다. 일분일초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신문, 라디오, 티브이는 늦다. 누군가 텔레그램으로 보내준 유튜브를 보고 나와 친구들은 움직였다. 계엄군의 헬기보다 먼저 여의도에 도착했다. 이미 국회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시민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았다. 내란 사태, 무정부 상태는 계속된다. 나는 이번 ‘전범선의 풀무질’을 끝으로 한겨레 기고를 그만두기로 했다. 한겨레에 대한 사랑은 영원하다. 2019년 6월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을 인수했고, 그때부터 한겨레에 칼럼을 한달에 한번씩 연재했다. 벌써 5년이 넘었다. 풀무질은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과 함께 비건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지난 5년을 되돌아본다. 개 식용 종식을 이뤘고, 강원도 인제군 신월리에 국내 최초의 소 생크추어리 ‘달뜨는보금자리’를 건립했다. 내년 여름 개장을 앞두고 있다.



풀무질은 계속된다. 칼럼 대신 팟캐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도저히 새 책으로는 대형서점과 경쟁이 안 되어 헌책 판매도 개시한다. 2026년 3월3일은 풀무질 40주년이다. 을사년을 무사히 넘기고 풀무질의 불혹을 맞이하고 싶다.(끝)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